조금 걸어도 숨차고 기침·가래 … 폐암보다 무섭다는 COPD 아시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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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63·경기도 용인)씨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낸다. 외출이라고 해봐야 몇 달에 한 번씩 병원에 가는 것이 고작이다. 겉으로는 멀쩡했지만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서 몇 걸음 걷기도 힘들다. 처음엔 ‘몸이 좀 피곤한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침은 심해지고 숨 쉬는 것이 힘들어졌다. 뒤늦게 병원에 간 그는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으로 진단받았다. 김씨의 폐는 정상인의 30%밖에 활동하지 않았다.

COPD는 폐에서 산소를 교환하는 폐포가 손상돼 숨을 쉬지 못하는 병이다. 망가진 폐포는 호흡을 통해 들어온 산소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기도에 염증이 생기면 호흡은 더 힘들어진다. 폐기능이 50% 이상 손상되면 기침·가래·호흡곤란 증상이 나타난다. 눈앞에 있는 촛불도 끄기 어려울 만큼 숨 쉬기가 어렵다. 2010년 기준으로 COPD는 국내 사망원인 6위에 이름을 올렸다. 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에서는 연간 약 6000명이 이 질환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흔한 질환이지만 병에 대한 인지도가 낮다는 의미다. COPD의 발병 원인은 90% 이상이 담배다. 나머지는 간접흡연·공해·먼지 등 환경적인 요인이다.

폐기능 빠르게 악화돼 호흡곤란

폐의 컴퓨터 그래픽. COPD에 걸리면 산책·식사·목욕 같은 일상생활조차 어려움을 호소한다. 한 번 망가진 폐는 회복되지 않아 COPD 악화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

한번 망가진 폐는 예전 상태로 회복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COPD는 폐암보다 무서운 질병으로도 불린다. 일단 발병하면 병이 진행되지 않게 지연하는 것이 최선이다. 급격히 폐기능이 떨어져 사망 위험을 높이는 ‘악화’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 COPD의 악화는 단순히 환자 상태가 나빠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악화(exacerbation)’ 자체를 특정 질병 상태를 지칭하는 의학적 용어로 사용한다.

 예컨대 어떤 원인으로 심하게 기침을 하고, 가래가 끓는 COPD 환자는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더 자주 ‘COPD 악화’를 경험한다. 폐기능은 빠르게 저하되고, 호흡곤란 증상을 호소하기도 한다. 일을 하는 것은 물론 산책·식사·목욕 같은 평범한 일상생활조차 어렵다. 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 용석중 홍보이사(연세대 원주의대 호흡기내과)는 “연평균 3~4회 악화를 경험하는 중증 COPD 환자는 악화로 호흡곤란이 심해지면 자기 호흡만으로 생명을 유지하지 못한다”며 “COPD 악화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 세계 COPD 치료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GOLD(Global initiative for chronic Obstructive Lung Disease)에서도 COPD 악화를 예방하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담배 끊고 운동 … 폐활량 늘려야

COPD 악화를 줄이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COPD의 주요 원인인 담배를 끊는 것만으로도 COPD 악화로 사망하는 것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다. 운동도 도움이 된다. 폐활량을 늘리고 혈전(피떡)이 생기는 것을 막는다. 폐기관지가 약하기 때문에 환절기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예를 들어 COPD 환자는 감기에 걸리면 열이 나는 것으로도 위험할 수 있다. 열이 나면 우리 몸의 산소요구량도 덩달아 높아진다. 문제는 중증 COPD 환자는 평상시에도 산소가 부족해 숨을 헐떡거린다는 점이다. 용 교수는 “체온이 1도 오를 때 체내 산소요구량은 10%가량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COPD 환자는 단순히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호흡에만 일반인보다 3~4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만큼 호흡기 관련 질환에 취약하다는 의미다.

 요즘엔 약으로도 COPD 악화를 줄일 수 있다. ‘로플루밀라스트’(제품명 닥사스)와 같이 COPD 염증세포와 관련된 PDE4 효소의 활동을 억제한다. 2011년도 유럽호흡기학회(ERS) 연례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1년간 약물 치료를 받은 환자군 22%가 COPD 악화가 줄었다. 또 약물 치료를 받은 환자군 중 68%가 악화를 경험하는 빈도가 줄었다. 입원이나 사망으로 이어지는 중증 COPD 환자는 대개 한 해 2회 이상 ‘COPD 악화’ 경험이 있다. 임상 연구를 진행한 영국 런던 UCL의대 비샤 벤지하(Wisia Wedzicha) 교수는 “로플루밀라스트로 치료받은 환자는 COPD로 악화를 경험하는 횟수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며 “약물 치료를 받는 것이 COPD 악화를 막는 데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권선미 기자

COPD 악화를 예방하는 생활수칙

■ 금연한다

■ 땀이 날 정도로 운동을 한다

■ 인플루엔자·폐구균 백신을 맞는다

■ 환절기에는 공공장소에 가지 않는다

■ 외출할 때는 마스크를 쓴다

■ 손 씻기 같은 개인 위생을 철저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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