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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은 사라져도 스타일은 남는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48호 30면

1960년에 찍은 영화배우 잔 모로(왼쪽)과 코코 샤넬

“유행은 유행에 뒤떨어지게 돼 있다(Fashion is made to become unfashionable).”
1957년 미국 주간지 라이프(LIFE)에 실린 가브리엘 코코 샤넬의 말이다. “유행은 퇴색하지만 스타일은 남는다(Fashion fades, only style remains the same)”는 말도 남겼다.

브랜드 시그너처 <3>CHANEL

샤넬은 시간을 뛰어넘고 유행에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아이콘들을 남겼다. 최초로 디자이너의 이름을 걸고 탄생한 향수 N˚5, 검은색을 단순미와 우아함의 상징으로 만든 블랙 미니 드레스, 체인과 직사각형 잠금장치가 달린 퀼팅 백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 앞서 파리의 캉봉 거리에 자신의 매장을 연 초창기부터 샤넬이 천착한 아이템은 재킷이다.

시작은 슈트(suit)였다. 그는 1916년 저지(jersey) 소재로 만든 옷을 선보였는데, 스커트와 재킷도 그중 하나였다. 당시 여성들은 코르셋으로 몸을 조이고, 뻣뻣한 소재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값싸고, 가볍고, 신축성 있는 새로운 소재는 파격이었다. 샤넬은 가십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저지는 남성의 속옷을 만들 때나 사용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몸의 곡선을 지나치게 드러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흐르는 샤넬의 의상은 곧 유행이 됐다.

1939년 샤넬은 제2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쿠튀르 하우스의 문을 닫았다. 후엔 파리가 나치에 점령당한 상황에서 독일군 장교와 사귄 것이 알려져 스위스에서 망명 생활을 해야 했다. 53년까지 이어진 그의 공백기, 파리 패션계엔 크리스찬 디올이 나타났다. 47년 디올이 발표한 ‘뉴 룩(New Look)’은 패션을 주도했다. 들어올린 어깨선과 잘록한 허리선, 넓게 펼친 A라인 스커트는 고전적인 여성미를 강조한 새로운 실루엣이었다. 샤넬은 ‘뉴 룩’이 못마땅했다. 남성 디자이너들이 여성의 활동을 제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파리로 돌아온 샤넬은 1954년 새로운 컬렉션을 발표했다. 양모로 굵은 직물을 짠 트위드(tweed)로 스커트 슈트를 만들었다. 트위드는 거친 질감이지만 여러 색 실이 엮여 다채로운 색감을 낸다. 20년대 스코틀랜드 방문 이후 트위드는 샤넬이 가장 좋아한 직물이다. 스커트는 무릎 길이로 내려왔고 재킷은 칼라가 없는 심플한 카디건 스타일이었다. 자신이 26년 선보인 카디건 재킷의 재해석이었다. “옷이 우아하려면 움직임이 자유로워야 한다”며 그는 일자형으로 똑 떨어지는 재킷의 어깨 패드와 심을 제거했다. 당시 프랑스·영국 언론은 ‘우울한 회고전’ ‘완전한 실패’라며 혹평했다. 먼저 알아본 건 미국이었다. 라이프지는 “샤넬은 유행을 일으키는 정도가 아니라 혁신을 일으킨다”고 썼다.

1971년 샤넬이 세상을 떴다.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은 이는 카를 라거펠트다. 83년 브랜드를 맡은 그는 샤넬이 창조한 재킷을 매 시즌 진화시켰다. 청바지에 매치해 격식 차리는 옷이라는 통념을 깼다. 수영복·반바지와도 매치시켰다. 인조 가죽 등 새로운 소재를 함께 사용하기도 했다. 재킷은 어떤 스타일링도 가능하다. 옷차림의 기본인 TPO(Time·Place·Occasion)에 구애 받지 않는 거의 유일한 옷이다. 청바지에 걸치면 일상복으로, 정장 팬츠와 매칭하면 비즈니스용으로, 하늘거리는 시폰 스커트에 입으면 공식 석상에도 무리가 없다.

라거펠트는 트위드 재킷이 영원한 비결을 이렇게 설명했다. “변화는 생존의 비결이다. 하지만 절대 바뀌지는 않는다(Transformation is the secret of survival, but never change).” 2008년 봄·여름 샤넬 오트 쿠튀르 쇼의 무대에 19m 높이의 거대한 트위드 재킷이 설치됐다. 모델들은 옷 깃 사이로 걸어 나왔고, 재킷 속으로 되돌아가 또 다른 옷을 입고 걸어 나왔다. 샤넬 스타일의 시작과 끝이 곧 재킷이라는 걸 보여주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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