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박치기’도 피굴 먹고 나왔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48호 33면

일 년 중 ‘R’이 없는 달, 5월(May)부터 8월(August)까지는 굴을 먹지 말라는 서양의 속담은 널리 알려져 있다. 굴이 가장 맛있는 계절은 추운 겨울이다.
한번은 어느 식당에 가서 “경남 통영의 굴이 최고”라고 이야기하다 옆자리 전남 고흥 사람들에게 원성을 산 적이 있었다. 그들은 “굴의 참맛을 느끼려면 알이 크지 않은 고흥의 자연 굴이 최고”라고 목청을 높였다. 처음엔 출신지에 대한 자랑이려니 하고 지나쳤는데, 어느 겨울 고흥 시장을 돌아다니다 직접 집에서 끓여 내와 팔고 있는 할머니의 피굴 한 그릇에 푹 빠진 뒤부터, 통영 못지않게 고흥 굴도 최고라는 생각을 굳혔다.

레스토랑가이드 다이어리알(diaryr.com) 대표 이윤화

흔히 싱싱한 굴에 레몬즙 살짝 뿌려 바다내음과 함께 즐기지만, 따뜻한 굴전 또는 굴국으로 또 다른 시원함을 만끽하곤 한다. 그런데 피굴은 차가운 국물이다. 그것도 한겨울에 먹는다. 평안도 출신 백석 시인은 ‘국수’라는 시에서 절절 끓는 아루굴(아랫목)에서 먹는 겨울 메밀국수를 맛깔스럽게 그렸다. 최남단 고흥의 겨울 아랫목에선 회백색 굴 국물을 차게 해서 마시고 있음과 묘하게 비교된다.

껍데기째 야생적으로 끓인 뒤 찌꺼기를 거르고 다시 끓이기를 여러 번 반복한다. 그렇게 나온 통굴 진국을 굴 알맹이와 함께 차게 먹는 피굴은 고흥 아저씨들에겐 해장으로 죽는 날까지 넘버원이다. 예부터 “고흥 가선 힘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박치기로 이름 날렸던 프로레슬러 김일도 이곳에서 태어났다. 고흥 사람은 피굴에서 얻는 미네랄의 지혜를 일찍부터 알았던 것 같다.

▶해주식당 전남 고흥군 과역면 과역리 408·061-834-7242
▶중앙식당 전남 고흥군 도화면 당오리 522·061-832-7757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