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는 고독한 직업 … 정치적 의견 밝히면 미국선 징계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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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린 리보비츠 판사(왼쪽)와 프랑스의 장피에르 봉투 검사가 7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의견 표명 문제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오종택 기자]

“판사는 고독한 직업(lonely job)이다. 공적 영역뿐 아니라 사적 관계에서도 정치적으로 논란이 되는 이슈에 대한 견해를 표명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이것은 법관의 의무다.”

 미국 워싱턴 DC 1심 법원의 린 리보비츠(Lynn Leibovitz·52) 판사와 프랑스 두에시(市)의 장피에르 봉투(Jean-Pierre Bonthoux·50) 검사는 7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표현의 자유와 판검사의 정치적 중립 의무는 명확히 구분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지난 6일 대법원 주최로 열린 ‘국제 법률 콜로퀴엄’ 참석을 위해 서울을 찾았다.

 리보비츠 판사와 봉투 검사는 “윤리강령에 어떻게 규정돼 있는지와 관계없이 특정 이슈에 대해 편파적 의견을 갖고 있다는 평판을 받는 것 자체가 치명적인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1985년 조지타운대 로스쿨을 졸업한 리보비츠 판사는 법원에서 11년째 근무 중이다. 봉투 검사는 88년 프랑스 국립사법관학교를 졸업한 뒤 법무부와 법원을 거친 베테랑 법조인이다. 다음은 이들과의 일문일답.

 -미국이나 프랑스에서는 판사에게도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허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주(州) 법관윤리위원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현재 맡고 있거나 맡을 가능성이 있는 사건에 관해 의견을 밝혀서는 안 된다. 수정헌법 제1조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판사에겐 윤리강령이 우선한다.“(리보비츠 판사)

 “판검사는 윤리강령에 따라 표현의 자유를 제한받는다. 재판이나 수사에서 공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봉투 검사)

 -최근 한국에서 판검사의 정치적 의견 표명이 논란을 빚고 있는데.

 “미국 판사들은 정치적 견해를 이야기할 때 매우 조심스러워한다. 정치적 논란에 대해 견해를 표명하는 것은 윤리강령에 위배될 수 있기 때문이다.”(리보비츠 판사)

 -프랑스에는 판사 노조가 있다고 들었다.

 “판사들의 집단행동을 허용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 정부 입법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데 그친다. 정치적 견해를 표명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최근 사르코지 대통령을 비난하는 책을 쓴 판사가 징계를 받기도 했다.”(봉투 검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용에 대한 규제가 있나.

 “명시적 사용 금지 규정은 없다. 하지만 올린 글의 내용이 윤리강령 위반이 될 수 있다. 나는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외관(appearance)을 만들지 말자는 생각에 SNS를 쓰지 않고 있다.”(리보비츠 판사)

 “페이스북을 하고 있지만 내가 맡았던 사건 관련 기사나 칼럼을 올리는 정도다.”(봉투 검사)

 -만약 미국에서 판사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불공정성을 주장한다면.

 “예를 들어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street)’ 시위에 대해 견해를 표명한다면 주마다 윤리강령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윤리강령 위반으로 징계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단순히 시위대의 입장을 지지하든, 불법시위 자체를 지지하든 부적절하다고 본다.”(리보비츠 판사)

 -판사나 검사가 친구나 가족 등과의 사적 자리에서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것은 어떤가.

 “남편이 외부에 발설할 가능성은 없지만(웃음) 와전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한 이야기하지 않는다. 법관은 외로운 직업이다. 사생활에서도 신중해야 한다.”(리보비츠 판사)

 “내 사건에 대해서는 가족에게도 이야기하지 않는다.”(봉투 검사)

글=이동현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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