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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프랑스 ‘신EU 조약’ 추진 성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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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라 메르켈(사진 오른쪽) 독일 총리는 2일(현지시간) 베를린의 독일의회에서 노어베르트 람메르트(뒷줄 중앙) 하원 의장과 의원들에게 “유럽 재정위기의 해법으로 유로존 회원국에 엄격한 예산 규정을 적용하는 재정 통합을 이룰 것” 이라고 역설했다. [베를린 AFP=연합뉴스]

모처럼 세계 경제에 훈풍이 불었다. 이번 주 세계 주요 은행의 유동성 공조(달러 스와프)추진, 중국의 은행 지급준비율(지준율) 인하, 미국 경제지표의 호전 등 굵직한 호재가 잇따랐다. 또 프랑스·독일에 이어 유럽중앙은행(ECB)까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재정통합’이란 돌파구 마련에 동조했다. 2일(현지시간) 세계의 눈은 독일에 쏠렸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유로존 재정통합을 근간으로 유럽연합(EU) 회원국의 엄격한 예산집행을 규정한 ‘신EU 조약’ 제정 안을 독일의회에서 제시했다. 이 안은 9일 벨기에에서 열릴 EU 정상회담에서 가시화할 전망이다. 세계 금융시장도 화답했다. 유럽을 시작으로 미국·아시아 증시가 상승세로 돌아섰다. 다우존스 등 미국 3대 주가지수가 지난주 7% 상승률을 보였다. 유럽 증시도 30일 급등하고 1일 숨을 고른 뒤(소폭 하락), 2일 ‘연말 랠리’ 기대감에 다시 급등했다. 하지만 재정통합에 이르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런 불확실성 탓에 국제통화기금(IMF) 등은 여전히 내년도 경제 전망을 어둡게 봤다.

제 앞가림에 급급했던 유럽연합(EU) 주요국들이 모처럼 정치력을 발휘했다. 유럽 재정위기에 ‘돈 못 내겠다’며 고집을 부려 온 독일의 태도가 변화를 보였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일(현지시간) 독일의회 연설에서 “유로존 국가에서 엄격한 규정의 재정 통합이 만들어 질 것”이라며 신EU 조약 제정을 제안했다. 앞서 1일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지지자들에게 “프랑스와 독일이 새로운 (유럽의) 미래를 보고 있다”며 재정 통합 의지를 천명한 데 대한 화답이다. 유로존은 단일통화(유로화)·단일중앙은행(ECB) 금융체제이지만, 재정정책은 각 회원국이 알아서 한다. 그 부작용이 그리스 재정위기를 낳은 것으로 판단한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앞으론 유로존 국가의 대출에서 단 1센트도 잃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와 독일이 더 엄격하고 통합된 경제 거버넌스(단일 재무부)를 만들기 위해 EU 조약을 고치겠다”고 밝혔다. 엉거주춤했던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도 신EU 조약이 나오면 돈을 풀겠다며 힘을 실었다. 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릴 유럽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프랑스 메쉐르트자산운용의 펀드매니저인 길라움 샬로인은 “우리는 유럽 위정자들의 확실한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 호재도 잇따랐다. 중국이 긴축의 고삐를 풀었다. 인민은행(PBOC)은 지난달 30일 은행 지급준비율(지준율) 인하 카드를 꺼냈다. 2008년 이후 처음으로 5일부터 0.5%포인트(현행 지준율 21.5%) 내린다. 지준율은 은행들이 고객 예금 자산 중 일부를 중앙은행에 의무적으로 적립하는 비율이다. 은행 대출 여력이 그만큼 커지면 시중에 돈이 더 풀린다. 중국은 지난해 1월 이후 물가를 잡으려고 지준율을 12차례나 올리며 긴축 기조를 유지해 왔다.

같은 날 세계 중앙은행들도 뭉쳤다.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ECB·영국은행(BOE)·일본은행(BOJ)·스위스중앙은행·캐나다은행 등 5개 선진국 중앙은행은 유동성 교환(Liquidity Swap)에 합의했다. 달러 스와프 금리를 100bp(1%포인트)에서 50bp(0.5%포인트)로 내렸다. 이들 은행은 2013년 2월 1일까지 어떤 통화로도 달러를 싸게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미 시카고 소재 노던 트러스트 코퍼레이션의 제임스 맥도널드 수석투자분석가는 “주요 은행들이 엔진에 윤활유를 더 넣은 것”이라며 “이번 일이 최종 해결책은 아니라도 큰 금융 혼란을 예방하는 효과는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국의 시장지표도 좋았다. 우선 경기회복 기대감을 높인 지수는 고용이다. 미 노동부는 지난달 비농업 부문 취업자 수가 12만 명 늘었다고 2일 발표했다. 실업률도 지난달 8.6%로 2009년 3월 이후 가장 낮았다. 피어폰트증권의 스티븐 스탠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경제 전망이 호전되면서 기업들이 고용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분위기”라고 분석했다. 실물 경제에도 온기가 돌았다. 최대 쇼핑 시즌인 블랙 프라이데이(추수감사절 다음 날인 11월 25일)와 사이버 먼데이(연휴 다음 첫 월요일인 28일)의 매출이 사상 최대 기록을 세웠다. 전미소매연맹(NRF)에 따르면 블랙 프라이데이부터 추수감사절 연휴까지의 쇼핑 금액은 전년 동기보다 16%나 늘어난 524억 달러에 달했다. 사이버 먼데이의 소매업체 매출도 12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날보다 22%나 늘었다.

이런 호재 덕분에 세계 증시는 상승세를 탔다. 특히 12월이면 실적이 좋아지는 ‘연말 랠리’ 효과도 보기 시작했다. 지난달 30일 현재 미국 다우존스는 1246.96으로 전날보다 4.2% 올라 2009년 3월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을 보였다. 미국 3대 주가지수는 이번 주에만 평균 7% 상승률을 기록했다. 유럽 증시는 지난달 30일 급등에 이어 2일에도 유로존의 재정 통합 기대감에 큰 폭으로 올랐다. 범유럽 지수인 스톡스유럽600은 이번 주간 상승률이 2008년 11월 이후 최고치다. 섀퍼스 인베스트먼트 리서치의 리앤 데트릭 투자전략 담당은 “예상보다 나은 고용지표로 상황이 좋아지고 향후 몇 주간은 연말 랠리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유럽 국가의 국채 발행에도 숨통이 트였다. 프랑스·스페인이 성공적으로 국채를 발행한 데 이어, 채무위기를 겪고 있는 이탈리아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도 위험선인 7% 아래로 내려갔다. 1일 채권 유통시장에서 6.7%(전날 7.3%)로 떨어지더니 2일에도 하락세를 이어갔다. 마리오 몬티 이탈리아 총리는 5일 재정감축 조치의 가이드 라인을 발표한다. 1가구 1주택 재산세를 부활하고, 여성 근로자의 연금 지급 개시를 늦추는 경제구조 개혁안이다.

하지만 내년 세계 경제 전망은 여전히 어둡다. ‘초가삼간 태우기(유로존 와해)’는 모면할지 몰라도 ‘빡빡한 국가 살림(긴축재정+저성장)’으로 경기침체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IMF 게리 라이스 대변인은 1일 정례 브리핑에서 “세계 성장 전망치는 경기 위축을 반영해 내년 1월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세계 주요 투자은행들은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속속 떨어뜨렸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연초 5.9%에서 3.6%로, 골드먼삭스는 4.8%에서 3.4%로 깎았다. 그나마 내년 하반기에는 조심스레 경기 회복을 예상해 한국 경제가 상반기 침체, 하반기 성장의 ‘상저하고(上低下高)’ 흐름을 탈 것으로 봤다.

이원호 기자 llhl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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