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당신은 1% 학부모입니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박재현
사회2부장

사건·사고를 담당하는 기자들에게 ‘감정이입’에 따른 분노와 안타까움을 함께 불러일으키는 것 중 하나가 패륜범죄다. 피해자인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망할 자식이 있나”하며 분노하지만, 피의자의 그간 스토리를 들어보면 “왜 진작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을까”라는 아쉬움에서다.

 지난주 서울에서 발생한 고교 3년생 지모군의 모친살해사건이 그렇다. 전자가족(electron family: 핵가족보다 더 분화된 1~2인 가족)’이 돼버린 어머니와 그 아들은 그간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채 이승에서의 인연을 참극으로 끊어버렸다. 여기다 자식은 어머니를 살해한 뒤 8개월가량 시신을 집에 유기하고, 수능시험까지 쳤다고 하니 상식적으론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사건의 엽기성이란 측면에서 볼 때 기사화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이면에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교육문제와 이에 따른 가족의 해체라는 본질이 숨어 있었다. 사건의 당사자인 고3 학생은 ‘공부하는 기계’가 될 것만을 강요하는 어머니에게서 절망을 느꼈고, 그 속박으로부터의 탈출을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

 이 와중에 사건을 담당하는 경찰서에 20대 남자가 찾아와 지군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는 일도 있었다. 자신도 고3 시절 아버지에게 야구배트를 휘둘러 살인미수죄로 1년6개월간 복역했다고 했다. 그는 “옛날 사고방식대로 자식들을 억압하는 부모들에게 말하고 싶다. 자식은 독립적인 존재이지, 부모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며, 서로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등학생을 포함해 3남매를 둔 기자의 입장에선 “뭐 이런…”이라며 불쾌한 생각이 없지 않았지만 남의 일 같지 않아 ‘찔끔’하는 부분도 있었다.

 기자의 아내도 자식 공부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고등학생인 아들이 방과 후 학원에 가지 않고 운동을 할 때면 조바심을 냈고, 친구들을 만나 놀 때면 세상 걱정을 모두 뒤집어쓴 것처럼 좌절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아들의 방황을 보다 못한 아내는 기자에게 SOS를 쳤고, 부부는 도상훈련을 하듯이 아들의 하루 일과와 알리바이를 촘촘히 체크한 뒤 ‘엄친아’의 예를 들이밀며 추궁하곤 했지만 작전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후 찾아간 60대 입시 상담전문가의 지적은 지금도 얼굴을 후끈거리게 한다.

 ▶상담사=“아들이 왜 공부를 잘했으면 합니까?”

 ▶부부=“글쎄요,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중요한 것 아닙니까. 운동이나 예능보다는 (안정된 삶을 누리기 위해선) 공부가 휠씬 쉬운 방법이 아닐까요. 결과도 중요하지만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봤으면 합니다.”

 ▶상담사=“속칭 SKY 대에 가서 판·검사나 의사, 기업체 임원이 됐으면 하는 거죠?”

 ▶부부=(질문의 의도를 눈치채고) “뭐, 꼭 그렇다기보다는 아무튼 열심히 해서,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공부를 했으면 합니다.”

 ▶상담사=“아이들의 공부를 위해 뭘 도와주고 계시죠. 충고(잔소리) 말고… 혹시 서울대에 가려면 입시생 중 몇 프로 안에 들어야 하는지 아십니까.”

 ▶부부=“….”

 ▶상담사=“매년 70만 명가량의 학생이 수능시험을 봅니다. 서울대 유망학과에 가려면 1% 안에 들어야 하고요. 자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학생 부모님은 1% 안에 들었고, 지금도 1%가 되려고 노력하고 계십니까.”

 “혹시 아이들에 대한 채근이 아이들보다는 자기 자신들을 위한 것이 아닌지를 생각해 보고, 아이들을 통해 인생을 배워보라”는 조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제2, 제3의 ‘지군 사건’을 막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아이들보다는 학부모들의 의식전환이 더 필요한 것 아닐까.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님은 학교가 아닌 가정에서 더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것 같다. ‘카르페디엠(Carpe diem·현재를 즐겨라)!’

박재현 사회2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