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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최대 타타그룹 경영권, 젊은 사돈에게 넘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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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인도 최대 기업집단 타타(Tata)그룹의 후계자가 결정됐다. 23일(현지시간) 타타그룹 이사회는 승계위원회가 추천한 사이러스 미스트리(43) 타타선스 이사를 부회장으로 임명한다고 발표했다. 타타선스는 그룹 지주회사다. 이 회사의 부회장이 곧 그룹 2인자이면서 라탄 타타(74) 현 회장의 후계자가 된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사이러스는 2013년 1월 1일부터 인도 국민그룹 타타를 이끌게 됐다.

 사이러스는 이날 성명에서 “내게 주어진 막중한 책임을 잘 알고 있다”며 “지금껏 이뤄 온 위대한 유산을 이어받아 현재의 회사 가치를 지키고 또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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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러스 미스트리 후계자 낙점


 15개월에 걸친 승계작업의 결과였다. 라탄 회장은 지난해 8월 그룹 회장의 정년을 75세로 정하며 “2012년 말에 은퇴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죽을 때까지 경영권을 쥐는 신흥국 재벌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라탄은 후계자 기준도 제시했다. 그는“회사는 파르시(Parsi) 가운데 한 사람을 후계자로 선정할 필요가 없다”며 “후계자는 능력과 인품에서 적임자여야 한다”고 말했다. 파르시는 자라투스트라교를 믿는 인도 소수자(마이너리티)들이다. 타타 가문 사람들이 대표적인 파르시다. 가문이나 부족의 한계를 뛰어넘어 인물을 찾겠다는 의지 표명이었다.

 타타그룹은 곧바로 승계위원회를 꾸려 후계자 물색에 들어갔다. 위원회는 라탄 뜻을 좇아 가문 내 강력한 후보인 노엘 타타(54) 대신 사이러스를 후계자로 선정했다. 노엘은 라탄 회장의 이복 동생이다. 그룹의 해외 비즈니스를 총괄하는 타타인터내셔널 최고경영자(CEO)이기도 하다. 그는 지난해 이 회사 CEO로 선임되면서 차기 회장 후보로 급부상했다.

 사이러스도 타타 가문과 인연이 없진 않다. 그는 타타 가문과는 사돈 관계다. 그의 여동생 알루 미스트리가 노엘 타타의 부인이다. 사이러스는 주로 영국에서 생활했다. 영국 임페리얼칼리지와 런던비즈니스스쿨을 졸업했다. 이는 글로벌화한 타타그룹에 맞는 부분이다.

 사이러스의 아버지 팔론지 미스트리 팔론지그룹 회장은 타타그룹 지분 18.5%를 쥐고 있다. 개인 주주로선 가장 많은 지분을 장악하고 있다. 팔론지 가문의 재산은 76억 달러(약 8조7400억원)에 달한다. 인도 7위 부호다.

 인도 경제신문인 이코노믹타임스는 “인도 재계 사람들은 경영 능력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이러스를 반신반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라탄은 “사이러스의 자질과 수완가로서의 재능, 기민한 관찰력과 겸손함에 감명받았다”며 “내 기준에 맞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사이러스가 후계자로 선정되면서 라탄 현 회장의 시대도 저물게 됐다. 라탄은 독실한 자라투스트라교 신자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타타그룹의 체력을 업그레이드했다. 매출의 대부분을 해외 시장에 의존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동시에 검박한 생활로도 유명하다. 인도 ‘재계의 현자(자라투스트라)’로 불린다. 그의 이런 모습은 인도의 또 다른 재벌 미탈 가문과 곧잘 비교된다. 세계 최대 철강그룹인 아르셀로미탈의 회장인 라카슈미 미탈은 지난해 아들 결혼식을 초호화로 치러 인도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타타그룹은 시가총액 기준으로 인도 최대 기업이다. 철강·자동차·금융·유통·호텔·정보기술(IT) 분야의 계열사 100여 곳을 거느리고 있다. 잘 분산된 비즈니스 구조인 셈이다. 타타그룹은 오랜 식민지 생활을 경험한 인도인들에게 자존심과 동의어다. 타타그룹이 영국의 제철소 코러스와 명품 자동차 브랜드인 재규어를 인수해 지배하고 있어서다.

강남규 기자

◆자라투스트라=영어권에선 조로아스터, 독일에선 차라투스트라로 불리는 이란 북부 출신의 예언가. 기원전 600년께 태어난 그는 선과 악을 분명히 구분하고 절대 유일신 숭배를 주장했다.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그를 현자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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