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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라 눈물도 눈물 나름이다 최루탄에 어찌 감동 있으랴 국민의 바람이 다른 곳에 있거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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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사내 대장부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다’라는 건 틀린 말이다. 화장실 매너를 지키라는 얘기지만 전제가 잘못됐다. 남자의 눈물이란 오줌 방울만큼 가치 없는 게 아니다. 특히 지도자의 눈물은 그렇다.

 결정적 순간에 흐르는 지도자의 눈물은 감동적이다. 대중 앞에서는 더욱 그렇다. 용인술에 있어서도 효과 백배다. 그래서 많은 지도자가 써먹고 있지만, 진심 또는 고도의 연기력이 필요한 탓에 흔히 실패하고 만다.

 히틀러가 그랬다. 사실 그는 좀 병적이었다. 감정을 임계점까지 틀어막아 놨다가 발작적으로 울음보를 터뜨리곤 했다. 나치당 확립에 공헌한 오토 슈트라서의 탈당을 막기 위해 밤샘 설득을 하는 동안 그는 그런 울음보를 세 번이나 터뜨렸다. 그래도 막지 못하고 혼자 남아 또 울어야 했다.

 눈물의 달인은 누가 뭐래도 유비일 터다. 『삼국지연의』대로 영화를 만든다면 유비는 늘 눈물을 달고 다녀야 한다. ‘유현덕이 울면서 말하길’ ‘손을 잡고 눈물을 떨구다’ ‘흐느껴 울며 이별하다’ ‘서로 마주 보고 울다’ ‘목 놓아 크게 울다’ ‘눈물이 비 내리듯 떨어지다’ ‘눈물이 뒤엉키다’…. 오히려 안 울 때가 드물 정도다. 심지어 뒷간에서 허벅지에 살이 오른 것을 보고 신세를 한탄하며 울기까지 한다.

 짜증날 정도의 울보지만 히틀러보다는 한 수 위였다. 장비가 만취해 유비의 가족을 놔둔 채 서주를 잃고 돌아왔을 때 관우는 장비를 질책했고 장비는 스스로 목을 베려 했다. 이때 유비가 장비의 칼을 빼앗아 집어 던지며 목 놓아 통곡했다. “형제는 손발과 같고 처는 옷과 같다. 옷은 찢어지면 꿰매면 되지만 손발이 끊어지면 어찌 다시 이을 수 있겠는가.” 감동한 관우와 장비는 유비를 위해 목숨 바칠 것을 마음먹는다. 천하 삼분지계의 길이 이때부터 열리게 된 것이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려 세계를 감동시킨 의원 나리도 눈물의 힘을 알았나 보다. 국민에게 감동 주지 못하는 동료 의원들을 강제 눈물을 흘리게 해서라도 바꿔놓으려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 모른 게 있다. 자극을 받아 흘리는 눈물과 감정이 복받쳐 흐르는 눈물은 성분부터가 다르다는 사실 말이다. 정서적 눈물은 자극성 눈물보다 단백질 성분이 훨씬 많다. 그래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면 긴장이 풀리고 적대감도 완화되며 따라서 면역체계가 강화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극성 눈물은 다르다. 나트륨 많은 짠 눈물이다. 분노와 고통만 만들어낼 뿐이다. 같은 눈물이라도 히틀러와 유비의 효과가 달랐던 이유다.

 경위야 어찌 됐든 이번 일로 위정자들이 국민에게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하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다. 그렇기만 하다면야 한 번의 국제적 망신쯤은 기꺼이 감수하겠다.

이훈범 문화스포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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