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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노조 무엇을 얻었나]

중앙일보

입력

`7.11 은행 총파업'이 파업 하루만에 노조와 정부의 끈기있는 대화로 해결되자 강경투쟁 의지를 굽히지 않던 금융산업노조가 정부와의 합의과정에서 과연 무엇을 얻어냈느냐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2일 노사정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된 노.정 합의문에 따르면 금융노조는 투쟁 초기부터 줄기차게 요구해 왔던 ▶관치금융 철폐 ▶금융지주회사 도입 유보▶과거 관치금융 손실 보전 등 3개 사안에 대해 명분상으로는 소기의 목표를 달성했다는 평가다.

그러나 관치금융 철폐를 위해 특별법을 제정한다거나 금융지주회사제 도입과 관련해 고용안정 보장을 명문화하는 등의 세부사안에 대해서는 당초 요구사항을 관철시키지 못함으로써 실질적으로는 얻어낸 것이 별로 없다는 지적도 있다. 일각에서는 `은행장들이 정부에 원하는 것을 금융노조가 대신 싸워 얻어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관치금융 철폐 = 정부의 금융지주회사제 도입을 도화선으로 투쟁에 나섰던 금융노조는 금융지주회사제 도입의 불가피론에 저항받자 구조적인 관치금융 철폐로 방향을 선회, 이를 최우선 목표로 내세웠다.

금융부실의 저간에는 과거부터 계속돼 온 관치금융이 자리하고 있으며 종금사에 대한 유동성 지원, 채권펀드 조성 등을 `신 관치'로 규정, 관치금융을 제도적으로 철폐할 수 있도록 특별법을 제정할 것을 요구했다.

5차에 걸친 노.정협상에서 관치금융 철폐 문제는 은행의 경영자율성을 보장하고 정부가 정책을 펼 경우 문서 등 투명하고 명백한 방법과 절차에 따른다는 것을 국무총리 훈령이나 국무회의 결정사항으로 대외에 공표하는 선에서 합의가 이뤄졌다.

노조가 요구했던 특별법 제정은 무산됐지만 국무총리 훈령, 국무회의 결정으로 은행의 경영자율성을 보장받았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금융노조측은 관치금융 근절에 대한 정부의 의지와 약속 이행여부를 앞으로도 면밀히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금융지주회사법 도입 유보 = 이번 은행 총파업의 도화선이 됐던 금융지주회사법 도입과 관련, 금융노조는 관치금융 철폐를 전제로 정부가 향후 2∼3년간 자율경영의 풍토를 조성해 줄 경우 자력회생이 가능하다며 제도 도입의 유보를 요구했다.

그러나 `금융 선진화와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금융지주회사법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정부와 학계 전문가들의 강력한 논리에 부딪혔고 협상 중간단계부터는 지주회사 도입 이후 고용안정 보장을 명문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에 정부는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과 그렇지 않은 은행을 나누고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기준으로 한 금융지주회사제 운영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상태에서 노조와 협상을 벌였고 결국 이같은 맥락에서 합의가 이뤄졌다.

금융노조는 `공적자금 투입 은행에 대해 9월말까지 자체 경영정상화계획을 제출토록 하고 독립기구인 경영평가위원회에서 이를 평가, 정상화를 추진한다'는 합의내용에 의미를 두고 있다.

향후 2∼3년간 자율경영을 보장해 달라는 요구와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이제부터는 각 은행 경영진과 머리를 맞대고 실현 가능한 경영정상화 계획을 짜내는 과제가 노조에 주어진 셈이다.

고용안정 보장과 관련해 노조는 `정부주도의 강제적 합병은 없으며 조직, 인원감축에 관한 노사간 단체협약을 존중한다'는 데 합의, 어느 정도 요구사항을 관철시켰다는 평가다.

◆과거 관치금융에 의한 손실 보전 = 과거 관치금융에 의한 손실 보전과 관련해 금융노조는 구체적인 시한을 명문화하지는 못했지만 이 문제를 합의문에 포함시킴으로써 요구한 바를 얻어냈다는 평가다.

다만 수출보험공사 보증과 러시아 경협차관의 조속한 상환에 대해 정부가 `조속한 시일내에 명확한 처리방침을 결정하겠다'고만 약속, 어떠한 방향과 속도로 진행이 될 것인지에 금융노조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금융노조는 또 예금보험공사 및 한아름종금 차입금이 늦게 지급되는 은행에 대해서는 충분한 기회비용을 보상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냄으로써 과거 관치금융에 의한손실 보전 문제의 처리방향에 대해서는 흡족해 하는 분위기다.

(서울=연합뉴스) 김영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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