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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놈 해독의 두 경쟁자가 손을 잡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인간 지놈(유전자 정보) 규명 전쟁은 우주개발 경쟁 이후 최대의 과학적 대립이었다.

카리스마를 갖춘 지도자들이 이끄는 정부와 민간기업 양 진영이 인체의 30억 개에 달하는 DNA ‘문자’ 해독을 먼저 완료하기 위한 경쟁에서 기술과 언변의 극치를 달리며 승부가 나지 않는 대결을 벌였다.

그 작업의 과학적 중요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DNA 염기서열이 규명되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인체 기능의 많은 부분이 밝혀져 의학·생물학에 일대 혁신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정부의 인간 지놈 프로젝트(HGP)와 메릴랜드州 로크빌의 생명공학 회사 셀레라 지노믹스 간의 경쟁은 유전학 실험실에서 펼쳐진 정부 對 민간 기업의 충돌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도 띠었다.

이제 그 경쟁이 끝났다. 여러 해 동안 공개적인 비방과 화해 실패를 몇 차례 되풀이한 후 양측이 마침내 ‘데탕트’를 향한 일보를 내디딘 것이다.

HGP의 책임자 프랜시스 콜린스와 셀레라의 창업자 크레이그 벤터는 지난 6월 26일 워싱턴 D.C.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갖고 경쟁이 끝났으며, 양측이 모두 승리했고, 적대감이 해소됐음을 선언했다.

그것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는 알 수 없다. 어느 쪽도 가까운 시일 내에 염기서열 분석기를 끄지 않을 것이다. 양측이 통과한 ‘결승선’은 자의적으로 정한 지점일 뿐이며 최종판이라기보다는 ‘초안’에 가까웠다.

그리고 공동 발표로 과거의 양측 지놈 전사들이 지난 몇 년간보다 가까워졌지만 내부 관측통에 따르면 미래의 합의는 전면적인 협조보다는 조정의 형태를 띨 가능성이 높다.

한편 유전병의 위험도 예측, 개인의 유전적 구성에 맞춘 신약 개발 등 지놈 연구의 혜택이 실현되려면 아직 여러 해를 기다려야 한다.

싸움이 본격화된 것은 1998년 5월 벤터가 셀레라를 설립하고 샷건 염기서열 결정법이라는 기법을 사용해 3년 내에 인체 지놈을 완성하겠다고 발표하면서부터였다.

당시 더 느린 속도로 꼼꼼히 연구를 진행해온 HGP는 2005년을 시한으로 잡고 있었다. HGP 지지자인 생물학자 메이너드 올슨은 하원 과학위원회 연설에서 셀레라가 ‘연구보다 홍보에 열을 올린다’고 폄하하고 그들의 주장은 현실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벤터도 “내가 그쪽 입장이라 해도 불안과 위협을 느꼈을 것”이라며 비아냥댔다. 양측은 마치 군비경쟁이라도 하듯 염기서열 분석기능을 강화했다.

셀레라는 인터넷 유료 서비스 회원들에게 지놈 데이터를 먼저 보여주기 위해, 정부는 기업이 특허권 등으로 그 데이터를 독점할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1999년 말 콜린스는 “유전자 정보를 해독할 때마다 투기꾼의 손으로부터 그것을 구해내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들의 갈등은 지난 2월 HGP에 참여한 영국의 웰컴 트러스트가 HGP의 불만을 요약해 셀레라에 보낸 기밀서한을 자발적으로 공개하면서 폭발했다. 벤터는 그 행동을 ‘비열하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봄이 되면서 첫번째 해빙 조짐이 나타났다. 3월 벤터는 뉴스위크에 “비방과 흠집내기는 과학이나 투자자 모두에게 해롭다”고 말했다.

지난 6월 초 한 암 세미나에서 벤터와 콜린스는 서로 상대방의 방식을 칭찬하고 인간 지놈 분석에 참여한 모든 과학자들에게 공이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표했다.

그리고 6월 26일 공동성명이 발표되면서 그러한 기대는 현실로 나타났다. 양 진영의 과학자들은 적대상황의 종식을 환영했다.

베일러 의대의 HGP 연구소를 운영하는 리처드 깁스는 “모두가 염증을 느끼고 있다. 이것으로 무절제한 경쟁이 끝난다면 과학의 승리”라고 말했다.

견해차를 덮어두었거나 적어도 잠시 미뤄둔 과학자들은 이제 그 모든 데이터의 활용방안 연구라는 정말 흥미로운 일에 몰두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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