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업] 30년 빚은 달항아리 닮아가는 권대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칠야삼경(漆夜三更)에도 뜰에 나서면 허연 항아리가 엄연하여 마음이 든든하고 더욱이 달밤일 때면 항아리가 흡수하는 월광(月光)으로 인해 온통 달이 꽉 차 있는 것 같기도 하다. … 어찌하여 사람이 이러한 백자 항아리를 만들었을꼬….” 수화(樹話) 김환기(1913∼74)는 ‘청백자 항아리’라는 글에 이렇게 썼다.

 “몸통에 비해 좁고 높다란 굽에 나지막이 크게 벌린 입. 하얗게 윤기 도는 부드러운 감촉에, 팽팽함과 느슨함을 함께한 억양의 리듬을 지닌 둥근 모습, 아득한 세월을 떠올리게 하는 무수한 희미한 얼룩이며 상처자국, 흙과 사람과 시간이, 어떠한 서로의 부름과 거부를 펼쳐오면 이런 조선백자가 된단 말인가.” 이우환(75)의 글 ‘예감의 항아리’다.

  선배 예술가들이 다투어 칭송한 우리 미감의 고향, 달항아리다. 30년 넘게 가마에 불 지피며 달항아리(사진)를 빚는 권대섭(59)씨는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을 예술가가 아니라 도공이라 칭한다. 홍익대 미대를 졸업후 일본 규슈에 건너가 5년간 도자를 배운 뒤 평생을 흙바닥에서 뒹굴고 있다. “마음을 빚는 일은 아궁이에 장작불을 피우는 것으로 시작한다”며 경기도 광주 이석리 분원을 지키고 있다. 욕심부리지 않고 흙의 본질에 순응하는 모습, 모든 것을 태워버리고 남은 정결한 백색. 그는 그렇게 달항아리를 닮아간다.

  권씨의 전시 ‘백자 달항아리’가 26일까지 대구 동원화랑에서 열린다. 이 화랑 30주년 기념전이다. 053-423-1300.

권근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