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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안철수 현상 다시 읽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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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복지한국의 꿈’ ②와 ③을 쓸 기회가 계속 미뤄지고 있다. 젊은 독자들이 안철수 현상에 대한 다시 읽기를 강하게 주문해 왔기 때문이다. 곧 복지한국의 꿈을 포함해 현대 한국의 국내적·국제적 발전 요인과 경로, 그리고 미래 비전과 방향, 세계 문제에 대해 함께 성찰할 기회를 가질 것을 약속 드린다.

 안철수 현상은 이제 안철수 가치로까지 상승하고 있다. 안철수 현상이 안철수 폭풍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또 그의 정치 참여 여부, 성공 및 실패와 관계없이 그의 말과 행동에 대한 현재의 국민과 언론의 관심, 개인 지지도 등은 사적 개인을 넘어 하나의 사회적 실제로서 객관적 독해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안철수 현상은 그의 개인적 삶과 선택의 산물인 동시에 무엇보다 한국 사회의 현실로부터 발원한 기대효과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 때문에 우리 사회는 자연인 안철수와 안철수 현상을 각각 설명할 수 있을 만큼의 성숙도를 보여주어야 한다. 실업 불안, 비인간화, 비정규화, 이념쟁투, 불통, 불평 등을 포함해 오늘날의 사회 현실과 인간 고통에 대해 건전한 인간적 가치를 제시하고, 함께 아파하고 연대하며, 진정성 있게 해법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안철수들’은 언제든 다시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누가 과연 이 문제들에 대해 응답할 준비와 능력을 갖추느냐는 점이다.

 최근 안철수가 보여준 중요한 정치적·사회적 선택은 서울시장 불출마와 개인 재산 기부라는 두 번에 불과했다. 이 선택들은 언제나, 때로는 불법과 편법을 통해서라도 재물·권력·지위·이익을 더 많이 차지하고 더 많이 물려주려 아등바등해온 우리, 특히 기득 세력에 대한 선한 복수로 다가왔다. 높이 올라갈수록 자기의 학교·교회·언론·지역·측근·조직·이익·정당·이념을 더 좁게 더 노골적으로 챙기려는 최근의 국가·사회 현실에서 그의 내려놓음, 나눔, 양보는 반대였던 것이다.

 공공성의 표상과 실천 주체가 국가와 정치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사적 영역에서 한 개인의 삶과 선택이 왜 공적 가치의 실현으로 다가오고 있는지를 우리 공동체의 주요 제도 부문과 기득 진영은 무겁게 성찰해야 할 것이다. ‘1 대 99 사회’라는 표현이 웅변하는 고통스러운 현실은 국가·공공영역·주요 사회제도가 그동안 무엇을 해 왔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공공 영역의 공공성 상실, 이 전도된 현실을 고질적 병폐인 ‘좌우’ ‘여야’ ‘진보·보수’의 진영 논리를 넘어서 제기함으로써 안철수 현상은 안철수 가치로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경영, 정치행위, 정책선택, 예산배분, 언론논조, 법률집행, 학생교육이 진정으로 공적이고 인간적이었는지 해당 영역의 모든 주체는 함께 묻고 또 반성하자. 자기의 이익·이념·조직·기업·지역·언론·종교를 위한 개별적 노력과 성취는 정녕 소중하다. 인간의 궁극적 존재이유는 자유의 실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공동체 전체의 공적 가치와 제도로서의 공생·분배·형평·평등·복지와 얼마든지 공존 가능하며, 또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땐 자기 존재의 근거 자체를 잃게 된다. 우리는 사익의 표상인 기업과 회사조차 본래 출발이 ‘자본조직’이나 ‘이익조직’이 아니라 ‘공공조직’이나 ‘인간조직’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공적’이라는 뜻은 조직이나 공동체에 포함된 인간과 시민 모두의 일을, 모두를 위해, 함께 처리한다는 함의를 갖는다. 민주적 공공성의 궁극적 목적으로서 개인 삶의 자유와 안정을 말한다. 안철수 가치는 이제 개인을 넘어 사적 영역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민주적 공공성의 문제를 공공 영역과 정치 부문에서 실현할 것을 한국 사회에 요구하고 있다. 철저히 붕괴된 국가와 정치 영역의 공적 윤리와 역할의 근본적 회복이 절실한 시점이다.

 안철수 현상이 2040세대로부터 발원하고 있는 이유는 그들이 바로 공공성이 상실된 사회 현실의 고통스러운 개별 담지자이기 때문이다. 사회체제는 늘 개별 삶들을 규정한다. 개별 삶들의 요구가 배제되었던 기존 정당정치·제도정치에 이들의 참여를 통해 시민 요구와 시민 정치가 접맥되고 소통되는 바로 그 지점에서 비로소 삶의 문제, 복지, 자치, 소통, 박원순 당선이 대두한 것이다. 인간 삶의 문제들이 국가·정치·제도를 통해 공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 ‘월가를 점령하라’로 대표되는 직접행동이 등장한다. 공공성과 제도는 늘 온건노선과 점진주의의 실현 주체인 동시에 급진주의 차단의 방패이기 때문이다. 또 공공성은 언제나 참여와 제도를 두 날개로 하여 실현된다. 궁극적 문제는 다시 시민참여와 그것의 짝인 민주적 공공성인 것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