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초저출산 늪에서 벗어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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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출산율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현상은 선진국 공통의 ‘병’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미혼율의 상승과 초저출산에 대한 대응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이는 한국·일본·대만·홍콩 등 아시아 선진국만의 현상이다. 미국·영국·프랑스 등 서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진국들은 초저출산의 난관에 봉착하지 않았다.

 보고서는 그 이유를 사회·경제적 환경과 생활습관이 급격하게 변했음에도 아시아 국가들에 뿌리 박힌 혼인과 출산에 대한 전통적 가치관이 변치 않았다는 데에서 찾는다. 선진국 청년들은 결혼을 미루거나 기피하는 성향이 있다. 여성의 학력이 높아지고 경제활동 참여가 활발해지면서 만혼(晩婚)과 비혼(非婚) 현상은 더욱 강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에선 출산율이 유지된다. 젊은이들이 이성과 함께 사는 생활을 포기하진 않기 때문이다. 서구 선진국에선 동거 커플이 늘고, 이에 따른 혼외출산도 크게 늘었다. 이에 국가마다 혼외자녀에 대한 동등한 법적 보호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한국 젊은이들도 동거에는 관용적 태도를 보인다. 최근 한국 대학생 설문조사 결과 동거 찬성 응답은 80%였다. 하지만 실제 동거하는 청년 인구는 미미하고, 혼외출산보다는 낙태를 택한다. 사회적 편견과 혼외자녀 보호 제도의 미비가 우리 아이들의 출생을 막는 것이다.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우리 핵심생산층(25~49세) 인구는 49년 인구조사 이래 처음 줄었다. 8년 후엔 절대 인구가 감소할 전망이다. 우리는 기로에 섰다. 전통적 가치관이냐 미래 경쟁력의 핵심인 인구냐를 선택해야 한다. 인구를 늘리려면 국민의 가치관과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는 건 쉽지 않다. 이에 새로운 시대 환경에 맞는 정책과 제도의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 우리에겐 숱한 반대를 뚫고 개정된 호주제 폐지, 자녀의 성(姓) 선택 등을 명문화한 가족관계법 이후 이 문제에 대한 국민의식이 바뀐 경험이 있다. 제도의 변화는 가치관의 변화를 이끌 수 있다. 미래의 지속적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정부부터 전향적 태도를 보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