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는 처음부터 삐걱댔다. 그는 “나를 과대 포장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 말이 못내 거슬렸다. 이 말에선 두 개의 뉘앙스가 감지됐다. ①이승환이란 가수는 알려질 만큼 알려졌으니 쑥스럽게 더 꾸미지 마시길! ②더 이상 예전의 ‘특급 스타’ 이승환이 아니니 그 실체를 알려주시압!
①의 겸손인 줄 알았는데 결국 ②로 판명 났다. 최근 서울 성내동 드림팩토리에서 만난 이승환(46)은 거듭 말했다. “저는 10년 이상 내리막만 걷고 있어요. 앨범 판매량도 줄었고 공연장 규모도 축소됐죠. 초조했던 적도 있었지만 몇 년 전부터는 모든 걸 내려놓았어요. 그러니까 정말 마음이 편해지는 거 있죠?”
내리막을 걷는 이승환이라…. 그의 노래로 청춘을 견뎠던 지금의 30~40대는 동의하기 힘들다. 그의 이력을 차근차근 되짚어본다.
이승환. 1965년 12월 13일생. 싱어 송라이터 겸 프로듀서. 89년 ‘텅 빈 마음’으로 데뷔. 대표곡으로는 ‘기다린 날도 지워진 날도’ ‘덩크슛’ ‘천일 동안’ 등. 지금껏 총 1000만 장이 넘는 앨범을 팔았음.
‘1000만’ 가수가 10년째 내리막 길이라고? ‘이승환 콘서트’는 1000회를 넘기며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 콘서트로 자리잡고 있지 않은가.
-30~40대에게 ‘이승환=톱가수’란 등식은 상식일 텐데요.
“다 옛날 얘기에요. 작년에 10집 앨범을 냈는데도 사람들이 잘 모른다니까요. 1집부터 제 앨범을 제가 직접 제작했기 때문에 판권만 20개가 넘어요. 그런데 언젠가는 한 달에 음반 수익금으로 7만원이 들어온 적이 있어요. 어쩌겠어요? 최선을 다 하는 수밖에요.”
-음반 시장이 축소됐기 때문이겠죠.
“그런 측면도 있죠. 하지만 제가 스스로 고립을 자초한 측면도 있어요. 제 음악을 고집하면서 마니아만 좋아할 만한 음악을 주로 하기도 했고요.”
인터뷰를 시작하며 그가 했던 말은 사실이었다. 그는 요즘 기업체 행사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한다. “행사에서 내 앞 순서에 아이돌 가수가 불렀는데 내 차례에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서 머쓱했던 적도 있었다”며 헛웃음을 짓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행보엔 “내 음악만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공연지신(公演之神)’이란 별칭만큼은 놓을 수 없다는 다짐이다. 그는 “행사로 수익이 생기면 죄다 공연과 음반에 투자한다”고 했다. 최근 MBC ‘위대한 탄생2’의 멘토로 나선 것도 따지고 보면 공연 때문이다.
“작년 연말 공연이 기대에 좀 못 미쳤어요. 그래서 올해는 강아지나 키우면서 무조건 쉬려고 했어요. 올 여름에 했던 소극장 투어 콘서트가 큰 전환점이 됐죠. 공연에서 에너지를 받다 보니 다시 일어날 힘이 나더라고요. 오디션 프로에서 후배를 발굴해 볼 결심도 했고요.”
되살아난 그의 열정은 연말 공연으로 이어진다. 12월 23~25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공연지신’ 콘서트(02-742-1252)를 펼친다. 그는 “전석 매진이 되더라도 수익이 하나도 나지 않을 만큼 많은 물량을 투입할 계획”이라고 했다. 공연의 신(神)이란 타이틀이 붙은 만큼 기존 상식을 뛰어 넘는 연출을 선보이겠단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승환은 이토록 들끓는 열정으로 추락만 하고 있는 걸까. 아닐 것이다. 그가 “창의적인 뮤지션으로 영원히 남고 싶다”고 말한 데서도 알 수 있다. “인디와 메이저의 경계에서 어느 쪽과도 무리 없이 어울리는 뮤지션”이란 세간의 평가도 그렇다. 그는 끝내 제 음악으로 승부를 볼 것이다. “공연과 사운드만큼은 최고라는 자부심이 있다”는 그에겐 음악만이 생명줄이다. 그러므로 그의 과제는 이런 것이다. ‘공연지신’을 넘어 ‘음악지신(音樂之神)’으로 살아남기.
정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