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다음 달 23~25일 서울 올림픽홀서 ‘공연지신’ 콘서트 여는 가수 이승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이승환은 탄탄한 복근을 갖췄다. 매일 서너 시간씩 운동에 매달린 결과다. “무대에선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다. 아무리 빠른 곡을 불러도 숨이 차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했다. [드림팩토리 제공]

대화는 처음부터 삐걱댔다. 그는 “나를 과대 포장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 말이 못내 거슬렸다. 이 말에선 두 개의 뉘앙스가 감지됐다. ①이승환이란 가수는 알려질 만큼 알려졌으니 쑥스럽게 더 꾸미지 마시길! ②더 이상 예전의 ‘특급 스타’ 이승환이 아니니 그 실체를 알려주시압!

 ①의 겸손인 줄 알았는데 결국 ②로 판명 났다. 최근 서울 성내동 드림팩토리에서 만난 이승환(46)은 거듭 말했다. “저는 10년 이상 내리막만 걷고 있어요. 앨범 판매량도 줄었고 공연장 규모도 축소됐죠. 초조했던 적도 있었지만 몇 년 전부터는 모든 걸 내려놓았어요. 그러니까 정말 마음이 편해지는 거 있죠?”

 내리막을 걷는 이승환이라…. 그의 노래로 청춘을 견뎠던 지금의 30~40대는 동의하기 힘들다. 그의 이력을 차근차근 되짚어본다.

 이승환. 1965년 12월 13일생. 싱어 송라이터 겸 프로듀서. 89년 ‘텅 빈 마음’으로 데뷔. 대표곡으로는 ‘기다린 날도 지워진 날도’ ‘덩크슛’ ‘천일 동안’ 등. 지금껏 총 1000만 장이 넘는 앨범을 팔았음.

 ‘1000만’ 가수가 10년째 내리막 길이라고? ‘이승환 콘서트’는 1000회를 넘기며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 콘서트로 자리잡고 있지 않은가.

 -30~40대에게 ‘이승환=톱가수’란 등식은 상식일 텐데요.

 “다 옛날 얘기에요. 작년에 10집 앨범을 냈는데도 사람들이 잘 모른다니까요. 1집부터 제 앨범을 제가 직접 제작했기 때문에 판권만 20개가 넘어요. 그런데 언젠가는 한 달에 음반 수익금으로 7만원이 들어온 적이 있어요. 어쩌겠어요? 최선을 다 하는 수밖에요.”

 -음반 시장이 축소됐기 때문이겠죠.

 “그런 측면도 있죠. 하지만 제가 스스로 고립을 자초한 측면도 있어요. 제 음악을 고집하면서 마니아만 좋아할 만한 음악을 주로 하기도 했고요.”

 인터뷰를 시작하며 그가 했던 말은 사실이었다. 그는 요즘 기업체 행사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한다. “행사에서 내 앞 순서에 아이돌 가수가 불렀는데 내 차례에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서 머쓱했던 적도 있었다”며 헛웃음을 짓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행보엔 “내 음악만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공연지신(公演之神)’이란 별칭만큼은 놓을 수 없다는 다짐이다. 그는 “행사로 수익이 생기면 죄다 공연과 음반에 투자한다”고 했다. 최근 MBC ‘위대한 탄생2’의 멘토로 나선 것도 따지고 보면 공연 때문이다.

 “작년 연말 공연이 기대에 좀 못 미쳤어요. 그래서 올해는 강아지나 키우면서 무조건 쉬려고 했어요. 올 여름에 했던 소극장 투어 콘서트가 큰 전환점이 됐죠. 공연에서 에너지를 받다 보니 다시 일어날 힘이 나더라고요. 오디션 프로에서 후배를 발굴해 볼 결심도 했고요.”

 되살아난 그의 열정은 연말 공연으로 이어진다. 12월 23~25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공연지신’ 콘서트(02-742-1252)를 펼친다. 그는 “전석 매진이 되더라도 수익이 하나도 나지 않을 만큼 많은 물량을 투입할 계획”이라고 했다. 공연의 신(神)이란 타이틀이 붙은 만큼 기존 상식을 뛰어 넘는 연출을 선보이겠단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승환은 이토록 들끓는 열정으로 추락만 하고 있는 걸까. 아닐 것이다. 그가 “창의적인 뮤지션으로 영원히 남고 싶다”고 말한 데서도 알 수 있다. “인디와 메이저의 경계에서 어느 쪽과도 무리 없이 어울리는 뮤지션”이란 세간의 평가도 그렇다. 그는 끝내 제 음악으로 승부를 볼 것이다. “공연과 사운드만큼은 최고라는 자부심이 있다”는 그에겐 음악만이 생명줄이다. 그러므로 그의 과제는 이런 것이다. ‘공연지신’을 넘어 ‘음악지신(音樂之神)’으로 살아남기.

정강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