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무력화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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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오른쪽)이 10일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내려오고 있다. 왼쪽은 정홍형 민주노총 조직국장. [송봉근 기자]

김진숙(50·여)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타워 크레인에서 내려오는 데 309일이 걸렸다. 정리해고 철회가 받아들여졌으니 사실상 김씨가 승리한 셈이다. 노사 합의로 큰 불상사 없이 김씨의 장기농성이 끝난 건 다행이지만 많은 과제를 남겼다.

 우선 사측의 고민은 더 커졌다. 경영이 어려워도 정리해고자 94명을 1년 안에 재고용해야 한다. 이들에게 생활지원금 18억8000만원을 내년 말까지 지급해야 한다.

 한진중공업은 2008년 9월 이후 특수선(해군·해경 함정)을 제외하고 단 한 척의 선박도 수주하지 못했다. 현재 남은 물량은 11만 t급 탱커선 2척뿐이다. 이 선박들을 이달 말까지 건조해 선주에게 넘기면 일감은 없다.

 새로 배를 수주해도 설계와 자재구매 등 배를 만들기 전 선행공정만 10개월 정도 걸린다. 도장이나 전기 등 후행공정 작업자들은 선행작업이 끝난 뒤에도 일을 하려면 10개월을 더 기다려야 한다. 당장 수주에 성공해도 1년8개월 이상 일을 못하는 조합원들이 있다는 얘기다.

 한진중공업 노조 조합원은 670명. 특수선 인력을 제외하면 400~450명 정도의 인력이 남는다. 그래서 사측은 14일부터 생산직 260명을 시작으로 유급 순환휴직을 할 계획이다. 올 초 아시아 지역 선주와 컨테이너선 4척의 건조의향서를 맺었지만 아직까지 본계약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노사 분규를 지켜본 선주들이 본계약을 꺼리고 있어서다.

 사측은 최악의 경우 도크와 안벽(만든 배를 접안하는 시설)을 다른 조선소에 임대하거나 다른 회사의 블록을 하청받는 방법까지 검토하고 있다. 한진중 정철상 부장은 “현재 도크가 비어 있어 납기를 맞출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선주들을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노조는 회사 정상화에 협력하겠다고 하지만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차해도 노조지회장은 “노사 신뢰 회복이 우선돼야 한다. 조선업종을 잘 아는 경영진이 경영을 맡으면 회사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말할 뿐이다.

 한진중 사태는 다른 회사의 노사관계에도 나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해결 과정에서 법이 무시되고 당사자 간 해결이라는 ‘원칙’도 무너졌기 때문이다. 사업주의 정리해고와 근로자의 구제절차는 근로기준법에 명시돼 있다. 하지만 이 법은 휴지조각이었다.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은 한진중공업 타워크레인에 올라가 업무방해를 하면서 법치를 무력화했다. 민주노총과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희망버스는 불법 집회를 되풀이했다. 야당 정치인들까지 가세하면서 사태는 더욱 꼬였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한 관계자는 “경영위기에 봉착한 기업이 정치권의 개입으로 고용조정을 포기하면 기업 생존은 물론 근로자의 생계마저 위태롭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장정훈·위성욱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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