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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로라하는 화가들의 편지봉투 그림 혼자 보기 아까워 공개한 ‘고바우 영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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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누구도 모으지 못하는 것, 그걸 한 번 모아봐야지’ 하고 시작했고, 시작한 건 뿌리를 뽑아야겠기에 계속했죠.” 시사만화 ‘고바우 영감’으로 잘 알려진 김성환(79·사진) 화백이 첫 소장품전을 열었다. 수집품은 ‘까세(cachet)’. 우표에 연관된 그림을 편지 봉투에 그리는 걸 뜻한다. 그의 까세는 더 독특하다. 판매 개시일에 맞춰 새 우표를 붙이고 그 날짜 소인을 찍은 봉투(초일봉피·初日封皮)에 화가들의 그림을 받았다. 1965년부터 2006년까지 42년간 161명의 봉투그림 550여 통을 모았다. 천경자·장욱진·김창렬·김기창·이종상·황주리 등 화가부터 만화가 박수동·신문수·허영만, 영화감독 임권택까지 이 시대 문화인을 망라했다.

김성환이 2009년 소인 찍힌 봉투에 그린 까세.

본인의 그림 전시는 십 수 번 했지만 아끼던 까세를 공개하는 것은 처음이다. 롯데백화점 창립 32주년 기념으로 서울 소공동 본점 롯데갤러리에서 9∼24일 여는 ‘다정한 편지-작은 봉투 속의 대작’전이다. 113명의 봉투 그림 260여 통을 선보인다. 우표수집가였던 그는 서울 전농동에 살 때 이웃사촌으로 왕래가 잦았던 박수근(1914∼65) 화백을 먼저 떠나 보냈다. 친분관계의 증표가 될 만한 소품이라도 남아 있었으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에 화가들의 봉투 그림을 받아두기 시작했다.

천경자(1988년 초일봉피·왼쪽), 김창열(1997년).

 평소 친하게 지내던 천경자(87) 화백은 날아가는 재두루미 우표 옆에 석채(石彩)로 앵무새를 그렸다. 88년 4월 1일이라는 소인이 찍혀 있다. ‘물방울 화가’ 김창열(82)은 꽃 그림 우표 옆에 물방울 한 방울을 그렸다. 그 시기에만 나온 우표와 소인, 화가들의 그림이 어우러지니 손바닥만한 종이 봉투는 살아있는 역사가 됐다.

 유명 시사만화가라 해도 쉽지 않은 수집이었다. 화가들을 찾아가 설득하고, ‘고바우 영감’ 원화를 선물하거나 술을 사고, 몇 달씩 기다리는 등 정성을 쏟았다. 해서 그는 “가장 어렵게 모은 수집품이 가장 오랜 사

김기창이 그린 파초 옆 선비(1976년).

랑을 받는다”고 말했다. “돈만 있다고 유명 작가들 작품 다 사 모으는 것, 과시하는 건지 진짜 좋아하는 건지 의심스러워요”라며 요즘의 ‘미술투자’ 세태를 꼬집기도 했다. 관람료 무료. 02-726-4428∼9.

권근영 기자

◆까세(cachet)=가문의 문장(紋章)이 새겨진 반지를 봉투에 찍어 봉인하는 걸 뜻하는 프랑스어다. 오늘날의 수집가들 사이에선 우표에 연관된 그림을 봉투에 그려 넣는 걸 말한다.

사진

이름

소속기관

생년

[現] 만화가

193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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