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중기 적합업종의 폐해’를 기억하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동반성장위원회가 두부,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레미콘 등 25개 품목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선정한 것은, 외국기업에 안방을 내주는 어리석은 결정이다. 대기업의 진입을 막고, 사업 철수와 축소를 강제해 중소기업들이 좋아진다면야 박수 칠 일이다. 하지만 2006년 폐지된 중소기업 고유업종과 단체 수의계약(隨意契約)제도가 어떤 부작용을 낳았는지 되짚어 봐야 한다. 그럴싸한 명분으로 자행된 반(反)시장적 정책은 시장만 왜곡시켰을 뿐이다.

 대기업 참여를 막은 조명(照明)의 경우 외국계인 GE·필립스·오스람 3개 업체가 국내 전구시장의 70%를 잡아먹었다. 국내 조명 중소기업의 80%는 여전히 종업원 5명 이하의 구멍가게를 벗어나지 못했다. 정부·여당의 압박으로 대기업들이 손을 떼는 소모성 자재구매대행(MRO) 사업도 마찬가지다. 그 공백을 외국계 MRO 업체들이 하나씩 차지하고 있다. 당초 희망대로 중소기업들이 힘을 합쳐 대기업 MRO를 인수할 것 같지도 않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오히려 제4이동통신 같은 엉뚱한 분야를 호시탐탐(虎視眈眈) 노리고 있다. 한 푼의 비용절감이 아쉬운데도 대기업들은 앞으로 중소 MRO 업체들과 수십만 개의 물품을 일일이 구매하기 위해 새로 수백 명의 전담인력을 배치해야 할 판이다.

 ‘상생협력’과 ‘동반성장’은 자연스럽게 유도해야지 강제할 사안이 아니다. 과잉(過剩) 보호를 받는 중소기업들은 영락없이 온실 속의 화초로 시들어간다. 전두환 정부 이후 수십 년간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가 지속됐지만 대기업으로 성장한 케이스는 찾기 어렵다. 우량 중소기업들도 대기업이 되기 싫어하는 ‘피터팬 증후군’만 초래했다. 오히려 웅진·미래에셋·NHN 등은 대기업과 정면승부를 펼치며 국내 100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정부·여당의 중소기업 보호조치는 무역 분쟁 때문에 외국계 기업에는 강제할 수조차 없다. 결국 중소기업보다 거대 외국기업들의 배만 불리는 꼴이다. 그럼에도 소비자 만족을 저하(低下)시키고 중소기업의 자생력마저 떨어뜨리는 이런 조치들이 왜 정치의 계절마다 반복되는지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