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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분노 키운 건 8할이 꼼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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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나는 꼼수다’가 장안의 화제다. ‘나꼼수’는 정치에 대한 풍자나 개그의 차원을 넘어 정치권력에 대한 섬뜩한 비판권력으로 자리 잡았다. 뉴욕 타임스 아시아판에 헤드라인 기사로 등장할 정도다. 지난달의 재·보선에서 트위터와 ‘나꼼수’가 보여준 위력은 기존 정당과 언론의 기능을 단숨에 우스갯거리로 만들었다.

 젊은이들은 후련하고 재미있다면서 갈채를 보내지만, 장·노년층은 저질 짝퉁 방송이라고 짜증을 낸다. 그러다가 서울시장 선거에서 참패했다. ‘나꼼수’에 대한 보수층의 짜증보다 현 집권세력에 대한 청년층의 짜증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젊은 세대에 감동과 신뢰를 주지 못하는 기성세대는 조롱과 경멸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기성세대가 그동안 피땀 흘려 이뤄낸 모든 성취들마저 도매금으로 비난받는다. 비판은 이성적이지만, 비난은 감성적이다. 예절을 기대할 형편이 못 된다.

 오늘날 정치와 권력이 위기를 맞은 것은 그 무능력 때문만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신뢰의 상실에 더 큰 원인이 있다. 공약(公約) 뒤집기는 예삿일이고, 입장이 달라지면 국가정책도 하루아침에 뒤바뀐다. 국민 앞에 공표했던 정책도 “그때는 잘 몰랐다”고 뒤집으면 그만이다. 결코 모를 수 없고 또 몰라서도 안 되는 중책(重責)의 자리에서 나온 정책인데도 말이다.

 말 뒤집기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대학 등록금의 반값 인하를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던 여당은 반값은커녕 반의 반값도 인하하지 못했고, “국립대 등록금을 사립대 수준으로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정책 방향을 제시했던 교육부총리는 야당 의원이 되자 “반값 등록금은 시대정신”이라고 소신을 뒤집었다. 그는 무상급식에 대해서도 “초등학교만 해도 작은 부담이 아니다.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 폭을 늘려나가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라고 밝혔었다. 물론 지금은 전면적 무상급식을 주장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투자자·국가 소송제도(ISD)에 대해 “한국의 사법체계를 부정하는 협상”이라고 비판했던 사람이 지금의 여당 대표다. “ISD가 국내 제도의 선진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평가를 주도했던 인사가 현재의 야당 원내대표이고, “한·미 FTA는 노무현 대통령이 제일 잘한 일”이라고 칭송한 정치인은 야당 대표가 되어 그 반대투쟁을 이끌고 있다. “향후 50년간 한·미 관계를 지탱해줄 기둥”이라고 한·미 FTA를 극찬했던 사람이 지금은 ‘신(新)을사늑약’이라고 거칠게 비난한다. 미국을 일제(日帝)와 같은 침략국으로 규정한 셈인데, 그는 대선·총선에서 낙선하자 그 침략국으로 건너가 체류했다. 광우병의 주범이라는 미국산 쇠고기가 널려 있는 그 못된 나라에.

 반미(反美)를 외치는 정치인들 중에 미국에 가족을 보내거나 은밀히 재산을 묻어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은 이미 공지의 사실이다. 입으로는 반미, 몸으로는 친미(親美)인 아리송한 꼼수다. 그렇지만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 반미를 부르짖고 한·미 FTA를 극력 반대하는 사람들도 정권을 잡으면 또다시 말을 바꿀 가능성이 커 보이기 때문이다.

 “반미 좀 하면 어떠냐”는 발언으로 젊은 표심(票心)을 움직였던 전직 대통령 한 분도 미국 방문길에서는 “6·25 때 미국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나 같은 사람은 지금쯤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갇혀 있을 것”이라며 미국에 고마워했다. 그리고 지지자들의 반대에도 아랑곳없이 한·미 FTA를 강력히 추진했다. 그는 지금 한·미 FTA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우상이 되어 있다. 이들이 만약 다음 선거에서 이긴다면 그의 정책을 다시 이어가려 할지 모른다. 그때가 되면 아마도 “사실은 잘 모르고 반대했다”면서 말을 거듭 바꾸는 꼼수의 정객들이 나타날 테고, 관대한 국민들은 그러려니 하며 또 한번 속아주기 십상이다. 그러나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분노는 더욱 깊어만 갈 것이다.

 미당(未堂) 서정주는 시 ‘자화상’에서 이렇게 읊었다.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

 걸출한 예혼(藝魂)을 키워낸 건 8할이 바람이었다. 그러나 국민의 분노를 키운 8할은 여야 정치인들의 꼼수다. 시인을 키운 바람에는 뉘우침이 없었지만, 국민의 분노를 키운 정치권의 꼼수에는 뼈아픈 뉘우침이 따라야 한다. 그리고 ‘나꼼수’는 저들이 지닌 죄의 눈길, 그 천치의 입술을 정파나 이념에 치우침이 없이 공평하게 꾸짖고 비틀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나꼼수’ 자신이 조롱의 대상으로 추락할 수 있다.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