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음치가 중국어 배우려니 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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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호 10면

“왜 중국어를 공부하세요?” 함께 중국어 강의를 듣는 C가 물었다. 학원 앞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고 함께 강의실로 들어오던 참이었다. 그는 내게 무슨 일을 하는지, 결혼은 했는지, 아이들은 몇 살인지 물었다. 나는 결혼정보회사에서 일하고, 결혼은 했고, 아이들 둘 다 군에 가 있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큰 아이들이 있을 나이로는 보이지 않는다면서 그는 놀라는 시늉을 한다. 그 나이에 대체 중국어는 배워서 무엇에 쓰려는 것일까? 그래서 물었을 것이다.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나는 중국어를 공부한다. 수업시간이 6시 50분이라 늦어도 5시 반에는 일어나야 하는데 아침잠 많은 내게는 고역이다. 고역은 또 있다. 중국어에는 성조라고 해서 소리에 높낮이가 있는데 나는 음치다. 게다가 나는 경상도 사투리가 심하고 특히 ‘으’와 ‘어’를 잘 구별하지 못하고 제대로 발음하지 못한다. ‘으’를 해야 할 때 ‘어’를 하고 ‘어’를 해야 할 때 ‘으’를 한다. 발음에 신경 쓰면 성조를 놓치고 성조에 신경 쓰면 발음을 놓친다. 중국어에는 ‘으어’가 많이 나온다. 가령 ‘이, 이것’을 나타내는 중국어 말이 ‘쯔어’인데 이처럼 ‘으’와 ‘어’가 붙어서 나오면 나는 어떻게 발음해야 좋을지 몰라 쩔쩔맨다.

차별대우를 하지 않는 선생님은 학생에게 고루 신경 쓴다. 한 사람씩 중국어로 대답하게 하고 하나하나 교정해준다. 다른 학생들은 발음도 좋고 성조도 정확하다. 나만 자꾸 틀린다. “자, 쌍드어, 천천히 해도 괜찮으니까 또박또박 정확하게 자신감을 갖고 해 보세요. ‘이것은 우리 엄마의 책입니다’를 중국어로 말해보세요.” 나는 ‘쯔어’부터 틀린다. “‘쯔’가 아니라 ‘쯔어’잖아요. 어, 하고 입을 벌려야 바른 소리가 나오죠. 자, 쌍드어, 따라 해보세요. 쯔어, 쯔어, 쯔어.” 경상도 출신의 음치인 나는 얼굴이 벌개져서 줄곧 쯔, 쯔, 쯔 한다. 제발 나 같은 열등생은 포기하고 진도 나갔으면 좋겠는데 선생님은 끈기 있게 가르친다.

중국어 학원에 등록할 때 예쁜 동기생들을 전혀 기대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예쁘고 따뜻하고 발랄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A는 눈웃음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중국어 발음을 할 때면 마치 새가 노래하는 것 같다. B는 영민하게 생겼다. 잘 웃는 편은 아니지만 따뜻한 느낌을 주는 인상이다. 성조도 발음도 항상 정확하다. C는 붙임성이 좋다. 서글서글하다. 내게 “중국어를 왜 배우느냐?”고 묻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중국에 대해서도 많이 아는 것 같다. 그 세 사람이, 그러니까 얼굴만큼이나 마음도 예쁜 동기생들이 짜증 한 번 내는 법 없이 자꾸만 틀리는 나를 응원하는 눈빛으로 기다려준다.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이 고역만은 아니다. 즐거움도 있다. 동기생들의 응원을 생각하며 나는 날마다 새벽 이부자리에서 몸을 일으킨다. 넥타이를 신중하게 고르고 아내 몰래 향수까지 슬쩍 뿌린다. 틈만 나면 ‘쯔어’를 연습한다. 외국어 공부는 요가 같다. 평소 잘 쓰지 않는 근육을 움직이기 때문에 힘들지만 자꾸 하다 보면 사고의 균형감각과 유연성이 길러지는 것 같다. 수업을 마치고 회사로 출근할 때면 뿌듯한 보람 같은 것이 스멀스멀 다리에서 기어오른다. 다만 한가지, 예쁜 동기생들이 모두 남자라는 점이 좀 아쉽긴 하지만.


김상득씨는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아내를 탐하다』를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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