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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세설

시스템이 결여된 도덕은 위험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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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서만철
공주대 총장

한국 사회에서 ‘모럴 해저드(moral hazard)’는 ‘도덕적 해이’로 통한다. 지식인조차 그렇게 번역한다. 모럴 해저드는 ‘계약당사자 중 어느 한쪽의 숨겨진(hidden) 행위로 인해 다른 계약자가 비용을 추가적으로 부담할 가능성이 높은 현상’을 말한다. 가령 화재보험 가입자가 화재예방을 게을리해서 다른 가입자들의 보험료를 높이는 경우를 뜻한다.

 그런데 모럴 해저드는 ‘도덕적 위험’으로 번역하는 게 옳다고 본다. 모럴 해저드의 개념을 최초로 정립한 케네스 애로(Kenneth J. Arrow) 교수의 관점과 ‘도덕’의 바이블로 통하는 『도덕경』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애로 교수는 모럴을 ‘해이(relaxation)’의 대상이 아니라 ‘위험(hazard)’의 대상으로 보았다. 그는 정보가 비대칭적인 상황에서 주인(principal)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의무가 있는 대리인(agent)의 비도덕적인 행위를 설명하는 도구로서 ‘모럴 해저드’를 사용했다. 성선설에 기초한 ‘도덕’이 아니라 성악설이 강조하는 ‘시스템’에서 모럴 해저드의 해법을 찾아냈다. 서양인 애로 교수는 ‘도덕’을 인간이 실천하기 곤란한 위험한 수단으로 본 것이다. 즉 시스템이 결여된 도덕의 실천적 요구는 위험스럽다고 파악한 것이다.

 『도덕경』의 저자인 노담은 도덕(道德)을 도(道)와 덕(德)으로 나눠서 정의했다. 그는 ‘도(道)’를 ‘만물의 근원에 존재하는 보편적 원리’라고 정의했다. 또 ‘덕(德)’은 ‘도를 체득함으로써 겸손·유연·양심·질박·무심·무욕을 몸에 익히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덕’에 관한 그의 얘기 또한 ‘도덕의 잣대는 위험한 논리’임을 시사한다. 동양인 노담에게도 무심·무욕 등을 비롯한 도덕 실천은 아주 힘들기 때문이다.

 선진 사회는 결코 인간 본성에 기초한 도덕의 준수에 모든 것을 걸지 않는다. 그들은 시스템적 사고로 ‘법과 제도’를 치밀하게 운용하면서, 단지 ‘도덕’은 하나의 보조수단으로만 활용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시스템인가? 일례로 금융기관 객장에서 운용되고 있는 ‘순번 번호표 제도’가 시스템이다. 이 제도의 도입으로 고객들은 일렬로 줄 서서 기다릴 필요가 없어졌다. 또 업무처리가 미숙한 직원 앞에 줄을 섰다가 일찍 왔음에도 불구하고 남보다 뒤늦게 업무를 마쳐야 하는 부조리도 말끔하게 사라졌다. 이런 것이 바로 시스템이 지닌 장점이자 매력이다.

 미래 사회의 진정한 국가경쟁력은 도덕 준수가 아니라 시스템 구축에 달려 있다. 실제로 모럴 해저드의 해결 방안도 느슨해진 도덕심을 타이트하게 강화하는 데 있지 않고, 사회구성원이 하지 않으면 안되게끔 법과 제도를 마련하는 데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모럴 해저드는 ‘도덕적 해이’가 아니라 ‘도덕적 위험’이 옳은 표현이다. 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건전한 합의를 기대한다.

서만철 공주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