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보험료, 자유화와 담합 사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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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호 30면

해마다 자동차 보험 만기가 돌아오면 성가신 전화를 받게 된다. 가입을 권유하는 손해보험 회사들의 전화다. 휴대전화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찜찜한 건 차치하고, 전화가 너무 많이 오는 바람에 일과에 지장이 있다. 적당히 응대하다 끊어버린다. 그럴 때마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왜 보험사들은 별 효과도 없는 이런 마케팅을 할까. 이 비용을 아끼는 대신 보험료를 낮추면 고객이 저절로 찾아올 텐데….

고현곤 칼럼

금융당국이 정해주던 자동차 보험료는 2001년 8월 자유화됐다. 보험사들이 각 사의 형편과 경영전략에 따라 보험료를 정할 수 있게 됐다. 당시 자유화가 되면 보험사들이 시장에서 경쟁하고, 그 결과 서비스는 좋아지고, 보험료는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믿은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자유화 이후에도 행정지도라고 불리는 금융당국의 ‘보이는 손’이 여전했다.

2003년 말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5개 대형 손보사들이 최초 가입자와 신차 구입자의 보험료를 인하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난색을 표했다. 과열 경쟁으로 보험료를 내리면 경영난이 가중될 수 있다며 인하를 철회하라고 종용했다. 금융당국은 인하 타당성에 대한 특별검사를 벌이기도 했다. 결국 보험사들은 보험료를 다시 올렸다. 자유화가 무색했다.

보험사들이 보험료 인상의 근거로 삼는 것이 ‘손해율’이다. 손해율이란 보험사가 거둬들인 보험료 가운데 교통사고 피해자 등에게 지급한 보험금의 비중이다. 보험사들은 보험료의 28%를 판매수당·관리비 등 사업비로 지출하고 있어 손해율이 약 72%를 넘으면 적자가 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72%라는 기준이 무슨 근거에서 나왔는지 알 길이 없다. 게다가 72%는 평균 개념이다. 보험사마다 사정이 다를 것이다. 보험사들이 같은 잣대에 따라 움직일 이유가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보험사들이 손해율 72%를 근거로 손쉽게 보험료를 올리다가 올해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손해율이 안정되면서 8개월째 70%대 초반에 머물고 있기 때문. 올 회계연도에 14개 손보사들은 2조원 넘는 순이익을 올릴 전망이다. 보험사들의 평소 주장대로라면 보험료를 내릴 여건이 무르익고 있지만 미적거린다. 손해율이 계절에 따라 변동이 심하므로 적어도 1년 정도 추이를 보고 결정해야 한다는 게 보험사들의 입장이다. 지난해 손해율이 상승한다며 보험료를 연거푸 두 번 올려놓고, 손해율이 떨어질 때는 1년은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올릴 때는 비호처럼, 내릴 땐 꾸물꾸물. 국제 유가에 연동하는 휘발유값과 비슷하지 않은가.

더 유감스러운 것은 보험료를 정할 때 보험사들이 공생하듯 같이 움직인다는 점이다. 금융당국의 보이는 손이 작용한 탓이겠지만, 담합의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는 자동차 보험료 담합 조사를 여러 차례 벌였다. 가깝게는 지난해 말에도 조사했다. 한 정부 내에서 금융당국은 행정지도라는 명분으로 보험료 조정에 관여하고, 공정위는 담합이 아니냐며 조사하고 있다. 웃지 못할 풍경이다. 처음부터 당국의 개입 없이 시장원리에 따라 경쟁했으면 담합 논란은 없었을 것이다. 보험료는 지금보다 낮고, 보험사의 경영 효율성은 높아졌을 게다.

보험사들도 책임이 있다. 진작 구조조정을 통해 사업비를 줄이고, 보험금 누수를 더 치밀하게 막았어야 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눈치를 보면서 그 우산 아래서 안주했다. 손해율이 높아질 때마다 자구노력보다 보험료를 올리는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 고객에게 부담을 떠넘긴 셈이다. 자유화 이후에도 가짜 교통사고 환자와 과다 수선비 등 보험금이 엉뚱하게 새는 현상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그러는 사이 보험사와 고객 간의 신뢰는 금이 갔다. 보험사들이 자동차보험 부문이 여전히 적자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고객들은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보험사들로선 억울하겠지만, 자업자득이다. 최근 문제가 된 은행과 카드사의 수수료도 비슷한 구조에서 빚어진 일이다. 금융회사들이 시장에서 경쟁하며 수수료를 투명하게 결정하고, 고객에게 신뢰를 쌓았으면 갈등이 지금처럼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험사로선 남의 일이 아니다. 여론에 떠밀려 스타일 구기기 전에 보험료를 폼 나게 내릴 방법을 찾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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