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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이슬람 ‘공공의 적’ 살만 루슈디 초기 대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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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수치
살만 루슈디 지음
김선형 옮김, 열린책들
432쪽, 1만1800원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거장인가 하면 이슬람권에 대한 불경죄로 처단 명령까지 받았던 인물. 여전히 ‘논쟁적’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는 인도계 영국작가 살만 루슈디(64), 그의 문학세계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장편소설이다. 우선 그의 초기 대표작이다. 1983년 발표돼 영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부커상 최종 후보에까지 올랐다. 작가로서 입지를 다지는 데 공헌한 것. 또 역사적 소재에 ‘마술적 리얼리즘’을 결합하는 루슈디의 개성이 두드러진 작품이다.

 소설의 배경은 20세기 파키스탄, 소재는 피를 부르는 폭력과 복수, 야만과 편견으로 얼룩진 파키스탄의 현대사다.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두 정적(政敵) 라자 하이더와 이스칸더 하라파. 둘 사이의 끈질긴 공방전, 이들의 직계 존비속, 사돈의 팔촌까지 시시콜콜 이어지는 이야기의 실타래가 소설의 몸통을 이룬다.

 소설의 주제는 영어 원제 ‘Shame’, ‘수치’라고 번역한 제목에 집약돼 있을 듯하다. 가령 168쪽에는 다음 같은 구절이 있다. “수치와 후안무치 사이에 우리가 돌아가는 축이 있다. 이 양극의 기상학적 조건은 극단적이고 치열한 타입이다. 후안무치, 수치: 폭력의 뿌리.”

 수시로 이야기 밖으로 튀어나와 무성극의 변사와 같은 역할을 하는 소설의 화자가 런던 한복판에서 요즘도 벌어지는 파키스탄 아버지의 명예살인을 언급하는 대목에서다. 딸이 백인 학생과 사귀자 아버지가 칼을 든 것. 루슈디는 인도에서 태어나 어려서 파키스탄에서 자랐고 영국으로 건너가 고등교육을 받았다. 그의 눈에 비친 ‘수치스러운 파키스탄’이 소설에 녹아 있다.

 무엇보다 루슈디 특유의 수다에 잘 적응해야 독서가 즐거울 것 같다. 소설 문장은 과장으로 가득하다. 수시로 장광설로 흐른다. 쉼표들로 이어지며 한 문장이 끝없이 길어지기도 한다. 그 능청스러운 리듬을 제대로 타는 게 관건이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읽어야 하는 소설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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