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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낫 들고 계단 돌진 … 영화 친구처럼 살벌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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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엘리베이터 앞에 2열로 도열한 검은 정장 차림의 젊은이들, 흉기를 들고 비상계단을 통해 쳐들어가는 깡패들…. 21일 밤 인천 길병원 장례식장 안팎에서 숨가쁘게 벌어졌던 난투극을 목격한 주민들은 “영화 ‘친구’의 장면들을 연상케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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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례식장에 납품을 하는 장모(34·인천시 남구 주안2동)씨는 이날 오후 6시쯤 이곳에 도착했다. 로비에는 평소와는 달리 검은 정장 차림의 짧은 머리 젊은이들이 2열로 길게 도열해 있었다. 이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의 빈소로 올라갔다. 이들이 사실상 엘리베이터를 독점하자 분위기에 압도당한 일반 조문객들은 계단을 통해 빈소로 향했다.

 납품을 확인해 준 장례식장 직원이 “오늘 밤 심상치 않을 것 같으니 일손 좀 도와달라”며 장씨를 붙들었다. 장씨는 그날 일도 끝나고 호기심도 동해 남기로 했다.

 밤 10시가 넘었을 무렵 장례식장 건너편 인도에서 조폭들끼리 큰소리로 다투기 시작했다. 불안감을 느낀 조문객 한 사람이 휴대전화로 112 신고를 했다. 순찰차 1대가 도착했지만 “상황이 종료됐다”며 돌아갔다.

 11시 좀 넘어설 무렵, 조금 전 다투던 이들 중 2명이 낫을 든 채 비상계단을 타고 돌진하다 다른 조직원에 의해 제지 당했다. 문상객들은 비명을 질렀다. 현장에는 경찰이 한 명도 없었다. 장례식장은 공포에 휩싸였다. 대부분 빈소 문을 닫고 숨을 죽였다. 장례식장 직원이 112 신고를 했다. 얼마 후 순찰차 2대가 도착했다. 한 시간여가 흐른 12시25분쯤 형사들이 탄 ‘범죄수사대’ 승합차도 도착했다. 형사들은 조직폭력배들에게 “조문 끝났으면 빨리 해산하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조폭들은 흩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경찰은 경고방송만 할 뿐 조폭들을 진압하지 않았다.

 이러는 사이 장씨와 직원은 빈소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출입을 자제해 주세요”라고 안내했다. 사무실에 돌아오니 형사 한 명이 “CCTV를 좀 확인하자”고 했다. 로비 쪽 영상을 복사하고 있는데 밖에서 “싸움이 벌어졌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밖으로 달려나가 보니 이미 한 사람이 부상을 입고 쓰러져 있었다. 형사들은 전기충격기로 가해자를 제압한 뒤 부상자의 상처 부위를 지압하고 있었다.

 장씨는 “이때부터 크라운파와 신간석파 조직원들이 장례식장 앞에 모여들어 서로 치고받고 발길질이 난무하는 난투극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친구 부친상 조문을 위해 이날 자정쯤 장례식장에 도착한 김모(56·부천시 상동)씨는 승강기가 내려오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했다. 한참 후에 도착한 승강기에는 검은 양복 차림의 젊은이들이 가득 타고 있었다.

 김씨가 5층의 빈소에 도착하니 상주들이 “낫을 들고 날뛰는 등 난리가 났다. 무서워서 숨도 못 쉬고 있다”고 말했다. 조문을 하는 둥 마는 둥 밖으로 나와 보니 형사들이 탄 승합차와 기동타격대 버스가 도착하고 있었다. 순찰차에서는 ‘해산하라’는 방송이 계속 나왔다. 김씨는 "경찰들이 ‘우리가 총을 들고 있는데도 싸움을 그치지 않는다’며 어이없어 하더라”고 말했다.

인천=정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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