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현의 전쟁사로 본 투자전략] 세계 최대 시장 중국은 한국 앞마당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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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20세기 초 아시아의 한 국가에 지나지 않았던 일본을 세계 무대로 도약시킨 계기가 바로 노일전쟁(露日戰爭·제정 러시아와 일본 간 전쟁)이다. 이유야 어떻든 유럽 대국을 상대로 동양의 작은 나라가 이겼으니 세계 열강은 일본이란 나라를 과거와는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노일전쟁 때 일본 해군이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한일해협에서 격멸시킨 쓰시마 해전은 세계 4대 해전의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쓰시마 해전은 일본 해군에 너무나 유리한 여건에서 진행됐다. 전투가 벌어지기 이전에 승패가 결정된 싸움이나 다를 바 없었다. 러시아의 발틱함대는 지구 반대편에서 출발해 3만㎞가 넘는 대항해를 거쳐 전투에 나섰다. 사람이 직접 석탄을 날라 연료로 때던 당시의 전함이 무려 9개월간의 대여정을 거쳤던 것이다. 권투선수에 비유하자면 마라톤을 완주한 뒤 링에 올라간 격이다. 도저히 ‘제대로 된 컨디션’으로 전투에 임할 수 없었던 셈이다. 반면에 일본 해군으로선 열심히 훈련에 임하며 적의 동향이나 신경쓰면 됐다. 이보다 더 유리한 조건이 있을까.

 결전의 장소도 일본 본토에서 가까웠다. 일본 해군에는 큰 이점이었다. 일본 해군은 대형 전함부터 어뢰정까지 모든 함정을 계획적으로 투입할 수 있었다. 러시아 함대는 낮에는 우월한 성능을 보유한 일본 해군의 함포에 두들겨 맞았다. 밤에는 소형 어뢰정과 구축함의 어뢰 공격에 시달렸다. 결전의 장소가 ‘안마당’인 일본 해군으로선 질 수 없는 전쟁이었으리라.

 선진국 국민의 주머니 사정이 극도로 나빠지면서 중국 소비시장이 세계 기업의 새로운 ‘결전장’으로 떠올랐다. 중국 소비시장의 규모는 단순히 중국의 인구만으로 논할 주제가 아니다. 중국은 매우 높은 저축률과 건전한 재정상태를 가진 나라다. ‘국민이 돈 벌어 빚부터 갚아야 하는’ 선진 소비시장과는 잠재력에서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세계 기업의 격전장인 중국 소비시장에서 한국 기업은 초코파이부터 문화 콘텐트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걸쳐 눈부신 성과를 내고 있다. 중국인의 관광 수요도 국내 기업의 수익에 기여하고 있다.

 한국 기업이 중국 소비시장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는 것은 한국과 중국이 지리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인접한 국가라는 데 있다. 쓰시마 해전 때의 일본 해군이 누리던 이점과 비슷하다. 거리상 가까울 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습관과 가치관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경쟁자에 비해 우위에 설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 기업의 주가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경쟁자의 주가보다 오히려 할인돼 거래되고 있다. 정상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만은 아닐 것이다.

김도현 삼성증권 프리미엄상담1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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