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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멧돼지가 싫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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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호 10면

혹시 멧돼지 고기를 먹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있다. 일본에 있을 때 일이다. 그 무렵 나는 야키니쿠 식당에서 일하고 있었다. 하루는 사냥꾼 차림의 남자 둘이 식당에 왔다. 그들은 “방금 멧돼지를 한 마리 잡았는데 그걸 여기 팔고 싶다”고 했다. 정말 그들의 트럭에는 갓 잡은 멧돼지 한 마리가 실려 있었다. 그들은 망설이는 사장에게 “자연산 멧돼지 고기를 한 번이라도 맛본 사람은 일반 돼지고기는 맛이 없어 아예 먹지를 않는다”고 하면서 살살 꼬드긴다. 사장이 사겠다고 하자 주방장이 사장의 팔을 잡는다. “사장님, 마마에게 혼날 텐데요.”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다행인지 불행인지 사장 부인, 마마는 오키나와로 여행 가고 없었다. 사장의 귀는 “사라”는 유혹에는 얇지만 “사지 마라”는 경고에는 두껍다. 당장이라도 마마가 돌아오면 멧돼지를 살 수 없을까봐 사장은 흥정도 안 하고 사냥꾼들이 부르는 대로 얼른 값을 치른다.

혹시 갓 죽은 멧돼지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엄청 무겁다. 주방장과 나는 멧돼지를 사냥꾼의 트럭에서 사장의 트럭으로 옮긴다. 식당에 딸린 농장에서 사장은 온갖 가축을 길렀다. 심지어 비둘기 기르는 탑도 있었다. 탑으로 올라가는 계단 난간에 멧돼지를 거꾸로 매달기로 했다. 피를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목숨은 따뜻하고 생명은 무겁다. 주방장과 나는 낑낑거리며 후끈후끈 육중한 멧돼지를 겨우 매단다. 그러자 멧돼지의 뾰족한 코로 뜨겁고 붉은 피가 마치 여름날 소나기 내리듯 후두둑 후두둑 쏟아진다. 그 광경을 사장이 흐뭇하게 바라본다.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주방장은 땀을 뻘뻘 흘리며 멧돼지의 껍질을 벗긴다.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사장은 말한다. “새 메뉴로 팔 거야. 인기가 많을 걸. 아암, 이색요리니까. 점장 추천 메뉴로 팔면 다들 좋아할 거야.”

사장은 ‘오늘의 추천: 스태미나에 좋은 자연산 멧돼지 구이’라는 문구를 컴퓨터로 정성껏 도안한다. 프린트한 종이로 식당 전체를 도배하지만 아무도 주문하지 않는다. 사장은 손님 테이블에 가서 직접 권하기도 한다. 역시 사람들은 하나같이 손을 내젓는다.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도록 단 한 사람도 주문하지 않자 결국 사장은 우리가 한번 먹어보자고 한다. 그리하여 그날 밤 우리는 멧돼지 구이 회식을 했다.

혹시 멧돼지 구이를 먹어본 적이 있는가? 엄청 질기다. 마치 타이어 고무를 씹는 것 같다. 특유의 냄새도 강하다. 여행에서 돌아온 마마도 회식에 참석했다. 마마는 한 점 집어 씹던 고기를 뱉어낸다. “당신 바보 아냐? 이렇게 맛도 없고 질기기만 한 것을 누가 먹겠어? 미쳤지! 이런 걸 그 많은 돈을 주고 사게.” 마마는 젓가락을 던지듯 내려놓는다. 식당에서 일하는 다른 직원들도 마마와 사장의 눈치를 보며 하나 둘씩 슬그머니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결국 사장 혼자 그 많은 고기를 꾸역꾸역 다 먹는다. 그 모습을 보며 마마가 노려본다. “맛있어?” 얼마나 맛있는지 사장은 대답도 안 하고 계속 고기를 먹는다.

그 사냥꾼들의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한 번이라도 멧돼지 고기를 맛본 우리는 그 후로 한동안 돼지고기라면 아주 질색을 했으니까.


김상득씨는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아내를 탐하다』를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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