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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속 노무현의 소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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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서경호
경제부문 차장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미국에서 통과됐다. 공은 이제 한국으로 넘어왔다. 한·미 FTA의 아이디어를 낸 것도, 체결한 것도 노무현 정부였다. 보수는 모처럼 손뼉을 쳤지만 진보는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을 한다”고 분노하며 돌을 던졌다. 이쯤 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육성을 다시 들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왜 미국과의 FTA를 밀어붙였을까.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오마이뉴스) 등에 나타난 그의 FTA 어록을 재구성했다. 문맥과 말의 순서는 다듬었지만 본질적인 내용은 그대로 살렸다. 무덤 속의 노무현은 이렇게 말했다.

 “1980년대 초반에 나도 외채 망국론을 열심히 강연하고 다녔다. 일면 논리는 있지만 한국에는 맞지 않았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반대도 했다. 그때 WTO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한국은 어떻게 됐을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도 마찬가지다. 나도 그때 야당 국회의원이라서 ‘쉬운 대로 안줏거리처럼’ OECD 가입을 반대하고 다녔다. 지금 와서 보면 좀 맞지 않는 것 같다.

 그 후 유통업을 중심으로 서비스업 개방이 많았고 한·칠레 FTA도 있었지만 별문제 없이 다 넘겨왔다. GM대우나 르노삼성처럼 외국 자본이 들어와 한국 자본을 지배한다고 반대했지만 지금 그 공장들 여전히 잘 돌아간다.

 진보주의자들에게 역사적 사실을 존중하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역사는 과거로부터 법칙을 배우고 그 법칙으로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 아닌가. 진보주의자들이 개방 문제와 관련해 주장했던 내용이 그 이후 사실로 증명된 게 하나도 없다. 진보주의자에게 꼭 부탁하고 싶은 것은 정책은 반드시 현실 속에서 과학적 검증을 거쳐야 한다는 거다. 공허하고 교조적인 이론에 매몰돼 흘러간 노래만 계속 부르지 마라. 일부 고달프고 불평하는 이들을 선동해서 끌고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FTA 목표는 경쟁력 강화다. 개방과 경쟁을 통해 세계 일류로 가는 길이다. FTA는 세계 최고와 한번 겨뤄보자는 의미다. 우리가 주도적으로 여건을 조성하고 우리가 제안해 성사된 것이다. 미국 압력 때문에 FTA를 추진한다는 논리는 미국 콤플렉스에서 나온 것이다. 왜 미국 얘기만 나오면 ‘압력’이란 표현을 쓰나. 반미는 열등감의 표현이며 뒤집으면 결국 사대주의(事大主義)다.

 경제 효과에 대해 아무리 열심히 연구하고 분석해도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불확실하지만 뛰어들어야 적어도 낙오하지 않는다. 버거운 사태가 벌어졌을 때 우리 국민은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 그만큼 변화에 적응력이 높았다. 감당할 수 있다는 믿음, 우리 국민의 역량에 대한 믿음, 그것이 FTA를 결정하게 된 중요한 이유였다.”

서경호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