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스타들의 춥고 배고팠던 시절

중앙일보

입력

어느날 갑자기 혜성같이 떠오른 스타들.

제니퍼 애니스톤이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니퍼 러브 휴이트등 행운의 주인공 같기만 한 헐리우드 스타들도 춥고 배고픈 날이 있었다.

브래드 피트의 애인으로 잘 알려진 제니퍼 애니스톤(31)은 스타덤에 오르기까지 7년이라는 긴 시간을 무명으로 보내며 '뜨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다.

애니스톤은 사실 유명한 TV 탤런트인 존 애니스톤의 딸로 뉴욕의 연기 고등학교를 졸업, 쉽게 성공할 수 있을 듯이 보였지만 현실은 그 반대였다.

고교 졸업 후 연기자로 성공하기 위해 수많은 오디션을 거쳤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오프 브로드웨이(Off-Broadway)의 연극 몇편 뿐이었다.

별달리 생계유지 수단이 없던 애니스톤은 뉴욕의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해야 했다.애니스톤은 인기 시트콤 '프렌즈'에서도 웨이츄레스로 나온다.

LA로 이주한 뒤에도 여전히 종업원으로 연명하며 헐리우드를 기웃거리다 겨우 'Molly'나 'Ferris Bueller'등 몇편의 시트콤에 출연했지만 시청률이 낮아 모두 단명에 그치는 불운을 당했다.

전혀 각광받지 못하는 무명배우로 당해야 하는 생활고를 견디며 애니스톤은 먹고 살기 위해 텔레마케팅 일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악전고투를 거듭하던 애니스톤은 별로 성공을 거두지 못한 TV 프로그램 'Muddling Through'에 출연했지만 여기서 두각을 나타내 헐리우드 제작진들의 주목을 받아 그녀의 출세무대가 된 시트콤 '프렌즈'에 캐스팅되는 계기가 됐다.

또 25살에 불과한 영스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14년동안 무명시절을 보낸 사실을 우리 영화팬들이 믿을 수 있을까.

그러나 디카프리오는 5살때부터 연기자로 나서며 TV 드라마 'Romper Room'에 출연했다.

이후 몇몇 광고를 찍던 디카프리오는 어느날 머리를 잘못 깍았다는 이유로 에이전트로부터 경고를 받는 한편 너무 어렵다는 지적에 이름마저 '레니 윌리엄스'로 개명까지 하게 된다.

이름까지 바꿨지만 불러주는 곳이 없었던 디카프리오는 광고만 계속 찍다(무려 30편!) 4년 뒤 겨우 공포물 '크리터 3'에 출연했지만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이를 악물고 버티던 디카프리오는 'Growing Pains'에서 홈리스 소년 연기를 기막히게 해내며 가능성을 보였고 'This Boy's Life'에서 로버트 드 니로의 상대 배역을 4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따내며 단숨에 일생의 소원을 풀었다.

한편, 최근 오드리 헵번의 일생을 조명한 영화에서 주인공역을 맡은 헐리우드 영스타 제니퍼 러브 휴이트(21)도 만만치 않은 고초를 겪은 케이스.

다섯 살 때부터 연예활동을 시작한 휴이트는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며 헐리우드 주변만 맴돌다 LA Gear 트레이드 쇼에서 춤추는 댄서로 나서기도 했다.

이후 우피 골드버그의 '시스터 액트2'에서 작은 배역으로 출연했지만 사람들은 전혀 알아보지 못했으며 노래까지 불러 3장의 판까지 취입했음에도 실패만 거듭했다.

이곳저곳의 엑스트라와 조연으로 전전하며 11년을 보낸 휴이트는 겨우 TV 시리즈 'McKenna'와 'The Byrds of Paradise'의 주연을 따냈지만 얼마 못가서 프로그램이 없어지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고진감래라고 했나. 휴이트는 1년 뒤인 95년 출연한 'Party of Five'가 커다란 인기를 얻으며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한편, 디카프리오등이 이같이 와신상담을 거듭하는 동안 브래드 피트의 전애인 기네스 팰트로우는 전혀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단숨에 스타덤에 뛰어올라 피트의 현재 애인 애니스톤과 대조를 이루었다.

기네스 팰트로우는 19살 때 영화 프로듀서이자 제작자인 아버지 브루스 팰트로우와 함께 '양들의 침묵'을 보려고 극장 앞에 줄을 서 있던 중 우연히 만난 아버지의 친구 스티븐 스필버그의 제의로 '후크'에서 어린 웬디로 출연하며 '한방'에 헐리우드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