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대 여성 갑상선 질환 급증 … 기형·유산 위험 커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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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을 하기 6개월 전부터 부부가 함께 건강관리를 하면 자연임신 성공률을 두 배 높일 수 있다. 특히 여성은 당뇨병과 갑상선·자궁 질환을 확인해야 한다. [게티이미지]

지난 4일 오후 2시 서울 은평문화예술회관. 키보드 연주자 지현수씨가 ‘젓가락 행진곡’을 재즈로 편곡해 연주했다. 300여 명의 임신부가 피아노 선율에 빠져 배를 쓰다듬었다. 은평구 보건소는 10월 10일 제6회 ‘임산부의 날’을 맞아 태교음악회를 열었다. 다문화가정인 최호성(40)·부김톼(21·베트남 출신) 부부는 3개월 된 태아를 위해 참석했다. 11월 11일 첫 아이를 출산하는 홍해월(33·서울 은평구)씨도 자리했다. 이날 참석한 임신부는 대부분 임신 후부터 태교와 건강관리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최소 임신 6개월 전부터 관리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순천향대병원 산부인과 이정재 교수는 “예비 엄마와 아빠가 임신 전에 건강을 챙기면 불임과 기형아 출산 위험을 낮출 수 있다”며 “태아가 출생해 성인이 된 후 고혈압·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에 걸릴 위험도 줄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홍해월씨는 “임신 전 관리는 처음 듣는다. 임신 후 관리(산전 관리)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임산부의 날을 맞아 자연임신 성공률을 높이는 임신 전 관리를 소개한다.

자연임신 성공률이 낮다. 전남대병원 산부인과 김윤하 교수는 “결혼 후 1년 내 자연적으로 임신할 확률은 30~40%에 그치는 것으로 보고된다”고 설명했다. 여성이 심각한 기형아를 임신할 확률은 1~2%다. 유산·조산(早産)·사산(死産)의 부담도 있다.

 전문가들은 만혼·비만·흡연·음주 등의 영향과 서구식 식생활을 원인으로 꼽는다. 이 때문에 남성의 정자는 병들고 여성의 배란이 불규칙해져서 자연 임신율이 떨어지고 기형아 출산 위험은 올라간다.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이근영 교수는 “특히 최근 늘고 있는 젊은 여성의 당뇨병·갑상선질환·자궁질환은 이 같은 현상을 부채질한다”고 말했다.

 


미혼모인 최모(35·서울 마포구)씨는 당뇨병과 임신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위험한 순간을 맞았다. 지난 5월 갑자가 배가 불룩해져서 병원을 찾았다. 임신 20주였다. 공복혈당이 200mg/dL로 정상수치의 두 배에 달했다. 양수가 급격히 늘어 30주에 조산했다. 아기는 출산 후 저혈당증과 호흡부전으로 두 달간 입원했다. 합병증 위험으로 장기간 관찰이 필요하다.

 최씨처럼 당뇨병으로 치료받는 20, 30대 가임 여성은 최근 5년간 매년 3만7000~4만 명에 이른다(국민건강보험공단).

 임신 계획이 있는 여성은 당뇨병 유무를 확인하고 6개월 전부터 혈당 관리를 해야 한다. 김윤하 교수는 “혈당 수치가 높은 여성은 심장과 중추신경에 이상이 있는 기형아를 가질 위험이 네 배 이상 높다”고 말했다.

이정재 교수는 “가임기 여성은 당뇨병 여부와 상관없이 공복혈당을 100mg/dL 이하, 식사 2시간 후 혈당을 130mg/dL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며 “임신 전부터 혈당을 조절하면 당뇨병에 따른 기형아 위험을 0%로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궁질환과 갑상선질환도 임신 전 관리가 중요하다. 자궁근종·자궁내막증·자궁선종 같은 자궁질환은 불임을 부추기고 태아의 성장을 가로막는다.

 김윤하 교수는 “자궁근종은 과도한 다이어트, 환경호르몬 등의 영향으로 젊은 여성에서 증가하고 있다”며 “태아에게 혈액과 산소를 공급하는 태반이 자궁근종 부위에 자리 잡으면 태아는 체중이 적게 나가는 발육부전이 생긴다”고 말했다. 자궁근종이 있는 임신부는 자연분만이 힘들고 산후 출혈이 심해 위험하다.

 자궁 안쪽의 조직이 비정상적으로 난관(卵管) 같은 자궁 밖에 자리 잡는 자궁내막증도 불임의 원인이다. 자궁내막조직이 자궁근육 속으로 파고들어 자궁근육이 두꺼워지는 자궁내막증도 자연임신을 막는다.

 최근 급격히 늘고 있는 여성 갑상선질환도 미리 치료받아야 한다. 갑상선 호르몬 분비량이 너무 많거나 적은 20·30대 여성 갑상선질환자는 2002년 9만9266명에서 2009년 13만6234명으로 증가했다.

 이근영 교수는 “임신 초 엄마의 갑상선 호르몬이 부족하면 태아의 뇌 발달에 문제가 생기고 임신부는 임신 중독증에 빠진다”고 설명했다. 반면 갑상선 호르몬이 많으면 자연임신이 힘들고 신진대사가 빨라져서 유산 위험이 높다.

 여성의 노력만으로는 자연임신 성공률이 60%에 그친다. 불임의 원인 중 40%는 남성의 정자 수가 적고 활동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20대 남성의 정자 운동성은 69.5%에서 2007년 48.5%로 뚝 떨어졌다. 정자 100마리 중 48마리만 운동하는 것이다.

 정자의 질을 떨어뜨리는 원인은 비만·음주·흡연 등이다. 비만인 남성은 지방에서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의 분비량이 증가한다. 김윤하 교수는 “대신 남성호르몬이 줄어 정자 수가 약 30% 감소하고 활동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이근영 교수는 “오늘 수정되는 정자는 약 90일 전에 만들어진 것”이라며 “임신 계획 6개월 전부터 금연하고 음주량을 줄여야 건강한 정자가 수정된다”고 덧붙였다. 비타민B는 정자의 생성과 활동에 좋다.

 이정재 교수는 “임신 전 관리를 하는 부부는 20~30%에 그친다”며 “임신 전 관리로 자연임신 성공률을 60%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황운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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