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관 문자’ 구글 번역기 돌려보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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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호 31면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인지 몰랐습니다.”
4일 이동관 청와대 언론특보가 박지원 민주당 의원에게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이 박 의원에 의해 공개됐다. 논란이 커지자 이 특보는 “‘내가 박 의원에게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었느냐’는 취지로 문자를 보냈다”고 해명했다. 문장에서 자신을 지칭하는 주어 ‘내가’를 빠뜨렸다는 얘기다.
이른바 ‘이동관 문자사건’을 접하고 무릎을 쳤다. 이 사건은 사실 정치보다 한국어에 대한 생각거리를 던져 준다. 이 특보는 짧은 문장 안에 우리말의 특성을 아주 잘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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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은 두 가지다. 이 특보의 해명 뒤 다시 논란이 벌어졌듯 대체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은 누구냐는 것이 첫째다. 또 하나, 그렇다면 ‘그 정도’는 어느 정도인가.

정답은 모른다. 해명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 각자 판단하거나 정 헷갈리면 애매한 것을 정해 주는 남자 ‘애정남’에게 문의할 일이다.

우리말은 구어체는 물론 문어체에서도 빈번하게 주어를 생략한다. 영문을 한글로 옮길 때도 ‘그는’ ‘그녀는’이라고 꼬박꼬박 챙기는 것이 어색하고 거추장스럽다. 또 ‘정도’의 표현은 어떤가. ‘과음하지 말고 적당히 마셔라’에서 ‘적당히’는 소주 몇 병, 와인 몇 잔이나 되는 걸까. 엄마의 손맛을 빛내는 ‘소금 적당히, 설탕 적당히’는 얼마만큼인지 수수께끼다.

그런 점에서 영어는 다르다. 주어 생략에 인색하다. 물론 “Thank you” “Sorry”가 있고, 명령문이 있다. 회화체에서도 간혹 생략이 일어난다. 하지만 글 문장에선 어김없이 주체가 드러난다. 가(假)주어라며 없는 주어까지 만들어 낸다. 계량적 표현도 우리말보다 정교하다.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은 번역 자체가 난감한 모호한 문장이다. 영어였다면 오해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해명이나 핑계 역시 불가능하다.

우리말은 말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이미 서로 안다는 것을 전제한다. 숨은 주체를 맥락으로 파악하고, 실체 없는 정도를 상식으로 합의한다. 말과 글 이면의 공감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이런 특성은 두루뭉술한 대화를 친밀하게 만들어 준다. 콩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을 수 있으니 요긴할 때가 많다. 하지만 ‘우리’가 아닌 사람들은 어리둥절하기 십상이다. 한국어가 꽤 유창한 영국인도 “주어 없는 한국어, 헷갈려요”라고 평한다.

그런데 한국인끼리, 피차 사정을 가장 잘 알 법한 사이에 ‘문자사건’이 일어났으니 인상적이지 않을 수 없다. ‘적당히’도 적당할 때나 요긴하지, 적당하지 않을 땐 ‘적당주의’가 되는, 심오한 것이 우리말이다.

쓰고 보니 이 글에도 주어가 빠진 문장이 여럿이다. 나 역시 읽는 이와의 공감을 전제하는가 보다.
그리고 혹시나 하여 구글 번역기를 돌려 봤다.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인지 몰랐습니다.” 구글은 이렇게 번역했다. “I was not aware that the human is only about.” 바른 문장은 아니지만 주어가 나타났다. 뭐, 그렇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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