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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저우가 울린 두 가지 위기 경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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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장세정
베이징 특파원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인들은 “라오반(老板·사장님)이 되고 싶어하지 않으면 원저우인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원저우인 열 명 모이면 아홉은 사장님이고, 한 명은 사장님이 되려고 창업 준비하는 사람”이라는 우스개도 있다. 개혁·개방은 그런 원저우인들의 ‘사장님 유전자(DNA)’에 불을 질렀다. 그들은 척박한 땅에서 농사를 짓는 대신 공장을 세웠고, 장사에 뛰어들었다. “농업은 공업만 못하고 공업은 상업만 못하다(農不如工 工不如商)”고 한 사마천(司馬遷)의 비즈니스 철학을 앞장서 실천해 먼저 부자가 됐다.

 중국 경제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해온 원저우가 요즘 심상찮다. 오죽 민심이 흉흉하면 4일 원자바오(溫家寶)총리가 올 들어 두 번째 원저우로 급히 달려갔을까. 7월 고속철 추돌 참사 당시 원 총리는 “사고 원인을 9월 중순 국민 앞에 공개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번엔 고속철을 언급도 하지 않았다. 연쇄부도 사태와 기업인들의 야반도주를 막는 일이 더 급했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풀었던 4조 위안(약 736조원)으로 야기된 극심한 인플레를 억제하기 위해 정부가 시중 자금을 서둘러 회수하면서 부작용이 커졌다. 은행대출이 막힌 민영 기업들은 연 180%의 고리대금에 손을 댔다. 3년 만에 글로벌 경제가 또 나빠지면서 급기야 ‘돈맥경화’ 현상이 터졌다. 4월부터 9월 말까지 원저우에서만 29명의 기업인이 사채 독촉을 못 견디고 줄행랑쳤다. 여차하면 전국으로 번질 수도 있는 위기 경보가 울린 것이다.

 또 다른 경보음도 들린다. 고속 성장 신화에 가려져 있던 중국 기업인들의 윤리 수준이 야반도주와 고리 사채를 통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원저우인들은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포장된 ‘중국식 자본주의’의 첨병 역할을 해왔다.

 『하느님이 원저우인들을 돈 벌게 했다』는 책을 쓴 푸단(復旦)대 우쑹디(吳松弟) 교수는 “부유해지려는 욕망을 분출해 시장경제의 파도를 잘 탔다”며 원저우인들의 성공 비결을 분석했다. 실제로 원저우인들은 부자가 되기 위해 누구보다 혈안이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동산과 주식 투기로 돈을 긁어모았다. 그런데 어떤 부자가 되겠다는 고민은 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인구 900만 명의 원저우는 중국에서 기독교도 비율이 특히 높은 곳이다. 그들의 서가에 『성경』은 꽂혀 있었는지 몰라도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없었던 것이다.

 ‘중국의 유대인’이라는 원저우인의 별칭에는 도전정신에 대한 평가 못지않게, 고리대금업자의 이미지가 겹친다. 중국의 신흥 자본가와 졸부들도 다르지 않다. 지금 원저우에서 ‘중국식 자본주의’는 새 도전에 직면했다.

장세정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