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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지경 태백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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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탁경명
강원방송 고문
전 태백생활도서관 건립관장

영욕의 옛 탄광도시 강원도 태백시를 누가 제2의 일본 유바리처럼 만들었나. 왜 빚더미 수렁에 빠져 기어이 재정위기 지방자치단체로 지정될 지경에까지 이르게 됐나. 결론부터 말하면 뼈를 깎는 국민 세금을 쌈짓돈처럼 여기고 펑펑 써댄 자치단체의 예산낭비 탓이다. 여기다 이를 견제 감시해야 할 지방의회는 뭘했는가.

 태백은 1995년 12월 영월·정선·삼척과 함께 폐광지특별법 제정으로 10년간 2조7700억원의 정부 지원을 받았다. 특히 태백은 99년 12월 시민현안궐기집회 후 정부와 앞으로 10년간 1조원 지원과 3000명 고용창출 산업을 육성키로 한 합의를 이끌어내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그러나 태백시는 돌이킬 수 없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정부 지원금 1조원에 포함된 관내 장성광업소 등 3개 가행탄광 운영비를 제외한 약 3000억원을 거의 손쉬운 도로개설사업 등에 써 버렸다.

 3000명 고용창출사업은 오투리조트에 2000명, 안전테마파크에 1000명의 일자리를 각각 만든다는 계획 아래 2005년 착수했다. 오투리조트는 당초 사업비로 1700억원이 책정됐으나 어찌 된 셈인지 단체장이 두 번 바뀌면서 무려 2450억원이 늘어난 4150억원이 됐다. 여러 번의 설계변경을 할 때마다 수백억원의 공사비가 부풀려져 재정파탄 위기를 부른 것이다. 1조6000억원 총사업비 중 빚이 9921억원으로 이번 국정감사에서 도마에 오른 강원도의 알펜시아 리조트를 빼닮은 세금낭비의 극치였다.

 안전테마파크는 2000억원을 들였으나 아직 준공도 하지 못한 채 그중 하나인 소방학교만 간신히 문을 열었다. 태백시는 80년 중반까지 국내 최대 석탄주산지의 탄광도시로 호황을 누렸던 한때 검은 노다지의 땅이었다. 81년 시 승격 때 13만 명의 인구는 89년부터 정부의 석탄산업합리화 조치로 탄광들이 문을 닫으면서 이제 겨우 5만 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시 승격 당시 174명이던 공무원은 현재 620명으로 3배 이상 늘어났다.

 이럼에도 이 엄청난 세금낭비의 재정파탄 위기에 대해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 먼 나라 얘기 같은 우리 지방자치제가 언제까지 어디까지 치달을지 한스럽다. 브레이크 없이 달려온 민선 5기 중반 18년 동안 뼈를 깎은 세금이 이렇듯 내버려진 것이 얼마나 될까. 가히 천문학적 액수일 것 같다. 많은 태백시민들은 몸부림치며 힘들게 사는 데 반해 이 파탄을 부른 단체장 등 선출직 공직자들은 그런대로 잘 지낸다. 오투리조트와 안전테마파크의 일자리 3000명 창출과 10년간 1조원이 지원된 경제효과 등에 재기의 기대에 부풀었던 태백 시민들은 태백시가 워크아웃을 당하면 어쩝니까?

탁경명 강원방송 고문·전 태백생활도서관 건립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