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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터, 예술가냐? 노동자냐?

중앙일보

입력

고부가가치 산업, 황금알을 낳는 거위, 그리고 엄청난 액수의 영상산업 지원금. 이 모든 것이 직접 작업을 하고 있는 애니메이터들에는 너무나 동떨어진 이야기로 들린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작업되고 있는 애니메이션 대부분은 해외에서 가져온 것들이라 국내 작품은 전체의 2%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전국적으로 2만명의 애니메이터들이 활동하고 있고 서울에는 1만8천 정도가 몰려있다. 그리고 학교와 학원에서 매년 2,000명의 애니메이터가 배출된다. 전세계 애니메이션의 60% 이상 수주받는 최대의 애니메이션 생산국이지만 애니메이터들은 근로자로서 기본적인 혜택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드디어 이들도 권리찾기에 나섰는데, 그 출발점이 바로 '애니메이션 노동조합'이다. 애니메이션 노동조합은 99년 5월에 준비를 시작, 99년 7월 31일에 노조설립 신고를 했다. 애니메이션 경력 16년의 류재운씨가 바로 애니메이션 노동조합의 노조위원장을 맡고 있다.

퇴직금도 못받는 애니메이터. 이유는 개인사업자?

현재 우리나라에는 152개의 애니메이션 회사가 있다. 이 회사에는 백명에서, 많게는 천명 가량의 애니메이터들이 근무하고 있지만 회사로부터 어떤 보험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퇴직금도 받지 못한다. 그 이유는 이들이 정규직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근무하는 애니메이터는 극소수(총감독, 동화감독 등)를 제외하고는 모두 개인사업자로 등록되어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 누구도 스스로 개인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회사측에서 일괄적으로 그렇게 처리를 한 것이다.

"사업자 등록을 냈기 때문에 퇴직금도 없고, 의료보험, 고용보험도 없습니다. 고용보험을 들지 않았기때문에 치료수당도 없고 산전·산후 유급휴가도 없지요. 이런 내용을 처음부터 알았다면 누가 개인사업자 등록을 했겠습니까. 하지만 이런 고지가 전혀 없었습니다. 법적으로는 1년이상 일을 하면 퇴직금이 발생하게 되어있지만 정당하게 퇴직금을 받아낸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외국작품을 받아서 하는 작업이 많기 때문에 그쪽 일이 줄어들면 자연히 국내 애니메이션계에 비수기가 닥친다. 애니메이터들은 정기적인 임금을 받지 못하기때문에 이 시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데 그때 이들은 가불을 한다. 가불한 돈은 돈으로 갚는 것이 아니라 노동으로 갚는다. 그러다 보니 개인사업자라고는 하지만 자연히 한 회사에 몇년씩 묶여있게 되는 것이다.

환율도 오르고 물가도 올랐는데, 떨어지기만 하는 동화 단가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작업은 거의 수출사업이다. 100%중에 2%는 국내 작업이고 나머지 98%는 외국에서 일을 받아서 한다. 특히 그중에 90%는 미국 것이고 나머지 8%가 프랑스나 호주라고 한다.

노조위원장 류재운씨는 애니메이터 경력 16년 동안 동화 단가는 오히려 떨어졌다고 말한다.

"제가 환율이 750~800원일때 동화 장당 700원을 받았습니다. 그때는 정규직이이서 기본급도 있고 초과수당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비수기일때도 적으나마 월급은 받았으니 지금보다는 나았다고 봐야죠. 그런데 IMF때 환율이 2000원까지 뛰었었는데도 동화 단가는 550원으로 내려갔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됩니까. 어떤 업체는 다들 힘든데 우리도 동참하자고 해서 동화단가를 깎았다고 하는데, 경력 2~3년차 되는 동화맨들이 거의 한달에 15만원~20만원 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하지만 이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애니메이터는 기술자지 예술가가 아니다

애니메이션 노조를 만들고 노조원들을 모으는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애니메이션 제작자 협회와 몇 회사에 단체교섭을 제기했었다. 그러나 협회에서는 단사로부터 교섭권을 위임받은 적이 없다고 하고 단사에서는 노조원의 이름을 밝히라고 요구해 난감했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애니메이터 자신이 가지고있는 예술가라는 인식 때문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그들은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열악한 환경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애니메이터는 기술자지 예술가가 아닙니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을 예술가로 포장을 시켜놓은 것입니다. 예술가가 되려면 국내창작이 되어야 예술이지 다른 나라 작업받아서 그들이 원하는대로 일정부분의 작업을 해주는게 무슨 예술입니까."

사측에서는 수주단가를 공개해야 한다

애니메이션 노동조합은 조용하게 하나하나씩 일을 해결해 나가고 있다.
"5월 23일 지방노동청에서 '컬러부의 애니메이터 작업'의 근로자 성을 인정 받았습니다. 그래서 컬러부 작업자들은 퇴직금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동화부, 원화부 등등 점점 범위를 넓혀갈 생각입니다."

과거에는 애니메이션 작업을 종이에 그림을 그리면 셀에 복사를 하고 색을 칠하고 촬영을 해서 롤필름으로 나오면 현상해서 보내는 등 작업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엔 거의 컴퓨터로 해결을 한다. 컴퓨터로 칼라, 촬영, 편집까지 모두 하는 시스템으로 가다보니 퇴직금 한푼 못받고 정리해고를 당하는 애니메이터가 점차 늘고 있다.

"이런 상황이 한 회사에 닥쳤습니다. 애니메이터들은 '디지털 교육을 시켜서 재취업을 시켜달라' 요구하고 회사에서는 '개인사업자인데 우리가 왜 해야하나'는 의견충돌이 있었지만 결국은 재교육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노동조합에서는 사망한 노동자에 대한 퇴직금 지급 거부 사측에 대해 퇴직금 지급 소송에서 승리를 했으며, 지금은 퇴직금 미지급에 대해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노동조합 홈페이지 http://my.dreamwiz.com/katu1/katunews.htm

노동조합에서 요구하는 것과 하고자 하는 활동은 명확하다.'악덕사주 고발' '전 애니메이터의 정규직화' '수주단가 공개'다.

"근로기준법에 제시되어 있는 노동자의 권리를 모두 찾을 겁니다. 그리고 이것은 작품의 질을 위해서도 필요한 작업입니다. 적은 단가로 인해서 날림작업이 많아져 작업의 질이 점점 떨어지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지요."

류재운 노조위원장은 어떤 문제이건 혼자서 해결하지말고 노조에 해결을 맡기라고 한다.
"과거에는 퇴직금을 받더라도 몇몇이 사측과 인간적으로 해결을 하려고 했습니다. 조합에서는 그런 개인적인 행동을 막으려고 합니다. 노조에서 정당하게 요구를 해서 수용하지 않을때는 소송해서 판례로 남길 생각입니다."

그리고 노동조합에서는 애니메이터 관리도 하겠다고 한다. 작업비를 미리받아 달아나거나 하는 애니메이터도 있는데 이런 사람들을 모두 퇴출시킨다는 것.

전국에는 2만명의 애니메이터가 활동을 하고 있다. 그중 조합원이 2천명으로 10% 정도되고 현재 점점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지금는 영세 비정규 노동자(건설일용, 인쇄, 재화, 재능교사 등) 12개 단체가 모여 공동 사무실을 낼 예정이라고 한다.

노동조합 홈페이지 http://my.dreamwiz.com/katu1/katunews.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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