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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 vs 소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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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배영대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요즘 EBS(교육방송)에서 방영하는 도올 김용옥 선생의 ‘중용 강의’를 흥미롭게 보고 있다. 지난 일요일 밤 ‘군자 vs 소인’편이 특히 그러했다.

 군자라고 하면 대개 동아시아 전통의 이상적 인물을 가리킨다. 성인(聖人)과도 통한다. 정치사회적으로는 통치자 계층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반면 소인은 군자의 반대로, 지배받는 계층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는데, 도올의 해석을 들으니 그런 것만이 아니었다.

 “군자의 행위는 중용을 지킨다. 소인의 행위는 중용에 어긋난다(君子中庸, 小人反中庸).” 『중용』 제2장에 나오는 구절인데, 공자님 말씀이다. 『중용』의 저자인 자사(子思, 기원전 483?~402?)가 공자의 어록을 자신의 책에 인용하고 있다. 공자는 ‘군자=중용’ ‘소인=반중용’이라며 군자와 소인을 가르는 기준으로 중용을 제시했다. 중용을 실천하면 군자가 되고, 중용을 실천하지 않으면 소인이라는 것이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란 유행어가 여기선 통하지 않는 셈이다. 한 번 군자라고 해서 영원히 군자가 아니고, 소인이라고 해서 영원히 소인으로 고착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군자였다가도 중용을 지키지 못하면 소인이 되고, 소인이었다가도 중용을 행하면 군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군자와 소인은 상호 가변적이다. 내가 남을 소인이라고 비난하기 전에 내가 소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줄여나가는 데 중용의 묘미가 있는 것 같다. 군자와 소인은 나와 남을 가르는 이분법 흑백논리로 구분되지 않는 것이다.

 자사가 공자의 입을 빌려 “시중(時中: 때에 맞추어 중용을 실천)”을 강조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때와 상황에 따른 중용이 있는 것이지 절대 고정적인 중용이 시공을 초월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또 『중용』에 나오는 공자의 다음 구절도 주목할 만하다. “중용이여, 참으로 지극하도다! 사람들이 거의 그 지극한 중용을 지속적으로 실천하지 못한다!” 이 구절을 도올은 공자의 시대에 대한 개탄으로 풀이하지 않았다. 인간에 대한 개탄이라고 해석했다. 중용을 상황에 맞게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중용』에는 이런 구절도 나온다. “어느 상황이든지 그 양극단을 고려하여 그 중을 백성에게 적용했다(執其兩端, 用其中於民).” 고대 중국의 대표적 성인으로 꼽히는 순 임금이 그렇게 정치를 했다고 한다.

 이념·계층·지역·세대 간 갈등이 적지 않은 우리 사회다. 우리 정치 지도자를 평가하는 덕목으로 중용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 벌써 시작됐는데, 예비 지도자들의 ‘중용 경쟁’을 기대해볼 수 있을까.

배영대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