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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 리스 자회사에 발목 잡혀

중앙일보

입력

지지부진한 리스사들의 구조조정이 국내 은행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정부가 외환위기를 계기로 부실이 심화된 리스사 구조조정을 마냥 '시장원리' 에 내맡기고 있는 동안 무디스 등 외국계 기관들은 "리스사 등 제2금융권 구조조정이 지연될 경우 은행부실로 이어질 것" 이라며 연일 경고하고 있다.

은행권(서울.제일은행 제외)의 리스사에 대한 여신규모는 무려 7조원에 이른다.

현재 은행들은 한꺼번에 손실을 떠안는 것을 피하기 위해 사업전망이 별로 밝지 않은 리스사들을 무더기로 사적 워크아웃에 집어넣는 데만 급급한 상태다.

사적 워크아웃이란 주요 채권금융기관들이 합의하에 부채를 출자금으로 전환해 주거나 원금과 이자를 깎아준 뒤 장기간에 걸쳐 빚을 나눠 갚도록 해주는 것.

하지만 리스회사 중 경영정상화를 바라볼 수 있는 곳은 손으로 꼽을 정도여서 "은행들이 리스관련 부실을 투명하게 처리하지 않고 일단 5~6년 뒤로 떠넘기고 보겠다는 심산이 아니냐" 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일단 워크아웃에 들어간 리스사 중엔 채권금융기관들이 대주주인 은행에 손실을 많이 떠넘기려다 워크아웃이 깨져 시장불안을 부채질하는 경우도 있다.

◇ 리스사 구조조정 어디까지 왔나〓외환위기 이전 25개에 달했던 리스 전업사 중 현재 채무조정 없이 독자적으로 정상적인 영업을 꾸려가는 곳은 신한캐피탈(대주주 신한은행)과 산은캐피탈(산업은행)두 곳에 불과하다.

나머지 23개사 중 6개사는 가교리스에 자산과 부채를 넘긴 뒤 청산절차에 돌입했고 4개사는 자체 청산 또는 매각이 완료된 상태다.

가교리스란 부실리스사를 정리하기 위해 98년 7월 설립된 '한국리스여신' 을 일컫는다.

현재 6개 리스사가 자산.부채를 가교리스로 양도한 뒤 청산절차를 밟고 있으며 가교리스는 이들 회사의 자산을 대신 관리하며 부채를 정리하게 된다.

또한 외환리스(외환은행)와 전은리스(전북은행)는 제3자 매각으로 처리방향이 확정돼 현재 작업이 진행 중이며, 제일은행과 씨티은행이 절반씩 지분을 갖고 있는 제일씨티리스도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으나 매각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그밖의 회사들은 모두 사적 워크아웃에 들어갔거나 추진 중인 셈. 개발리스(오릭스).한미캐피탈(한미은행).썬캐피탈(전 경인리스/경기은행 파산재단).신보리스(신용보증기금).주은리스(주택은행).조흥리스(조흥은행)등 6개사는 채권단과의 오랜 협의 끝에 채무조정계획이 확정돼 일단 5~6년간은 자구기회를 모색할 시간을 벌었다.

국민리스(국민은행).한빛여신(한빛은행).경남리스(경남은행)의 경우에도 경영이 어려워 상반기 중 채권단들의 동의를 얻어 사적 워크아웃에 들어가려 하고 있지만 상황은 만만찮다.

국민리스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워크아웃을 추진해 왔으나 채권금융기관들이 모은행인 국민은행이 우량 은행인 만큼 다른 채권자보다 손실을 더 많이 떠안아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아 별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고 털어놓았다.

기업리스의 경우엔 대주주인 기업은행을 공적 워크아웃에 넣으려 했으나 채권금융기관들이 "어차피 손실날 것을 뒤로 미루느니 차라리 청산해버리자" 며 반대해 지난 3월 말 가교리스행으로 방향을 틀기도 했다.

◇ 문제점은 없나〓리스사들이 동반 부실화했던 이유는 외자를 도입해 기업들에 빌려 주었다가 외환위기로 환율이 급등, 대규모 손실을 본 데다 경기가 위축되며 리스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

금융감독원 비은행감독국 이창수 과장은 "채무조정으로 추가 부실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경기호전에 따라 리스 수요가 점차 살아나면 별 문제가 없다고 본다" 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리스업계 전망이 별로 좋지 않다고 진단한다.

여신전문협회 황명희 과장은 "과거엔 은행돈을 쓰는 중소기업들이 다소 높은 금리를 치르고라도 리스를 이용했지만 최근엔 은행에서도 저리설비자금을 많이 공급하고 있기 때문에 리스사들이 설 땅이 거의 없다" 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상당수 리스사들은 최근 벤처투자에 뛰어들고 있다.

신한캐피탈 이용동 과장은 "향후 2~3년 내에 새로운 영업진로를 찾지 못하는 리스사는 문을 닫게 될 것" 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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