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연일 월가 공격 … 버핏 이 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지난달 말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매매 시작을 알리는 종을 울린 뒤 트레이딩 플로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뉴욕 UPI=연합뉴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81)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오랜만에 월스트리트 나들이에 나섰다. 지난달 말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매매 시작을 알리는 종을 울렸다. 그런데 그날 미국의 비영리 공영방송인 PBS와의 인터뷰에서 “버락 오바마는 ‘(대통령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월스트리트의 공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얼핏 보면 특별할 것 없는 말일 수 있다. 오바마는 1980년 이후 미 대통령 가운데 월스트리트와 거리가 먼 정치 리더로 꼽힌다.

 그러나 버핏의 말은 최근 그의 행적과 맞물려 묘한 파장을 일으켰다. 그는 월스트리트 나들이 직전 뉴욕에서 오바마 선거자금 모금 행사에 참여했다. 많은 사람이 지지율 하락으로 오바마에게 등을 돌리는 와중에 그는 모금 행사에 참석하는 적극성을 보였다. 오바마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지지를 과시한 셈이다.

 게다가 요즘 월스트리트는 홍역을 치르고 있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라는 소셜네트워크의 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시위대는 “월스트리트를 점령해 세상을 구하자”고 외쳤다. ‘인간을 짓누르는 ‘황금의 십자가(금권)’를 없애자’고 외쳤던 1960년대 학생 시위대의 외침이 되살아난 듯하다. 뉴욕 경찰은 2일(한국시간) 현재까지 700여 명을 붙잡아들였다.

 예일대 제프리 가튼(경영학) 교수는 “메인스트리트(평범한 시민들의 거리)와 월스트리트의 갈등이 60년대 이후 최고조에 달한 듯하다”며 “이런 와중에 버핏의 발언은 의도했든 아니든 편 가르기 효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버핏은 월스트리트가 오바마를 공격할 것임을 알림으로써 그의 지지세력을 결집시키고 있다는 얘기다.

‘월스트리트엔 황소(사는 사람)와 곰(파는 사람)은 없고 오직 돼지(욕심꾸러기)들뿐이다!’ 지난 1일 뉴욕 맨해튼 월스트리트 주코티공원에 모여든 시위대의 피켓 내용이다. 이날 그들은 “탐욕의 소굴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뉴욕 로이터=뉴시스]

 버핏은 금융위기 이후 월스트리트를 강하게 비판했다. “세금(구제금융)을 지원받은 은행의 경영자와 그의 아내는 빈털터리로 만들어야 한다” “월스트리트는 상식이 아니라 탐욕의 천지다” “돈놀이꾼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물려 (금융위기로) 고통받는 가정을 구해야 한다” 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위기 이전까지 월스트리트 머니게임을 경계하긴 했지만 시장의 효율성을 강조했다.

 버핏의 전기작가인 앨리스 슈뢰더는 “버핏의 별명 가운데 하나가 ‘월스트리트 구원자’”라며 “그는 위기 순간 골드먼삭스와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을 구제했으면서도 누구보다 월스트리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고 말했다.

 버핏의 양면성은 꽤 오래됐다. 그의 아버지 하워드 버핏은 공화당 하원의원이었다. 4선 의원이다. 워런 버핏은 한때 공화당 청년 당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지금 버핏은 민주당원증을 갖고 있다. 부자 증세(버핏 룰)를 주장해 오바마에게 힘을 보태줬다. 그러면서도 버핏은 공화당 소속인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출마한 2003년 적극 지지했다. 그는 “슈워제네거는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라며 “그가 캘리포니아 문제(재정적자)를 다루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슈뢰더는 “버핏은 민주당원이지만 시대 흐름에 따라 공화당도 지지한다”며 “이런 그가 메인스트리트 편에서 월스트리트를 비판하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요즘 월스트리트가 매 맞을 때란 방증이란 얘기다.

 실제 월스트리트에 대한 미국인의 생각은 19세기 이후 20~30년마다 바뀌었다. 자유방임과 거품에 뒤이어 위기가 찾아오면 미국인은 월스트리트를 악의 소굴로 봤다. 이런 때 규제는 강화됐다. 대신 시장의 효율성은 떨어졌다. 이후 효율을 중시하는 흐름이 되살아날 싹이 움트고 있는 셈이다.

강남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