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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번 “한국, 유럽에 물린 돈 적어 위기 이겨낼 체력 충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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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의 톰 번 국가신용등급 부문 수석부사장이 2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코리아소사이어티 주최로 열린 간담회에서 한국 경제와 국가신용등급 전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은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를 이겨낼 만큼 충분한 체력을 갖췄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의 톰 번(Tom Byrne) 아시아·중동 담당 부사장의 평가다. 그는 지난 5월 방한해 한국 정부와 연례협의를 이끈 바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는 조사단장으로 방한하기도 했다.

번 부사장은 한국 경제의 체질이 “97년은 물론이고 2008년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견실해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29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에서 코리아소사이어티가 연 강연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특히 2008년 3분기 80%가 넘던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 비중이 지난해 4분기 50% 밑으로 떨어졌다. 은행의 예금 대비 대출 비율(예대율)도 정부가 선제적으로 개입해 안정적인 수준으로 낮아진 반면, 자기자본비율은 높아졌다. 유럽이나 미국 은행처럼 그리스·아일랜드·포르투갈 등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국가 은행에 물린 돈도 많지 않다는 것이다.

 글로벌 위기 때마다 원화가치를 급락시키고 달러 기근을 초래한 주식시장 자금 유출도 최근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는 “2008년 1~9월 320억 달러, 2007년 1~9월 289억 달러를 각각 순매도했던 외국인이 올해에는 아직까지 68억 달러 순매도에 그치고 있다”며 “불안감이 컸던 이달에도 순매도액이 18억 달러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3200억 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액 역시 위기에 대처하기에 충분한 수준이란 게 그의 평가다.

 신용등급이 비슷한 국가와 비교할 때 정부 재정이 튼튼한 것도 한국의 강점이다. 그는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수지는 올해 0.5%, 내년 0.6% 흑자로 중동을 제외한 같은 등급의 다른 국가들 평균인 3.1%와 2.2% 적자에 비해 훨씬 양호하다”고 말했다. GDP 대비 정부부채도 올해 32.7%, 내년 32.9%로 예상돼 같은 등급 국가들 평균인 42.1%, 43.4%에 비해 더 낮다.

 그는 최근 잇따른 저축은행 영업정지에 대해서도 “전체 금융시장에서 저축은행 비중이 2~3%에 불과하고 다른 금융부문에 미칠 파급효과도 크지 않은 데다 정책당국이 강력하게 개입하고 있는 만큼 국가신용등급에 영향을 미칠 주요 변수(major issue)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번 부사장은 이 같은 진단을 토대로 올해 한국이 3.5~4.5%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번 부사장은 최근 남북 긴장관계의 해빙 무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지금과 같은 남북관계가 장기간 지속된다면 현재 ‘A1’인 신용등급이 한 단계 높은 ‘Aa’로 상향 조정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신용등급은 지정학적 요인만으로 평가하는 게 아닌 만큼 금융시장 여건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아직은 한국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할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한국 경제의 취약점으로 은행의 가계대출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을 꼽았다. 부동산값이 계속 떨어지면 은행의 가계대출이 부실화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은행의 외화자금 조달 구조가 취약하다는 것도 불안요인으로 지목됐다. 국제금융시장이 조금만 흔들려도 한국 은행들의 외화자금 조달 창구가 막혀 달러 기근이 되풀이된다는 얘기다. 지난해부터 정부가 각종 외환 유출입 관련 규제를 도입했음에도 자본 유출입이 들쭉날쭉한 것도 앞으로 한국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로 지적됐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톰 번이 말하는 한국 경제

▶강점

① 단기 외채 줄었다

② 은행 자기자본비율 높아졌다

③ 정부 재정이 튼튼하다

▶단점

① 은행의 가계대출 비중 높다

② 외화자금 조달 구조 취약하다

③ 여전히 큰 외환 유출입 변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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