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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세금낭비 스톱] 직원 25명에 웬 126억원짜리 읍사무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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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공사비 92억원을 들여 외관을 유리로 꾸민 아산시 탕정면 사무소(왼쪽). 오른쪽은 총 공사비 126억원을 들여 건설 중인 아산시 배방읍 사무소 공사현장. [아산=프리랜서 김성태]


27일 오전 충남 아산시 탕정면사무소. 왕복 6차로 도로 옆에 위치한 지하 1층, 지상 3층의 청사는 도심의 대규모 공연시설이나 외관을 중시한 회사 건물처럼 보였다. 건물 외벽은 사방이 유리로 둘러싸여 있었다. 건물 앞에서 한 시간 남짓 서 있었지만 이곳을 찾는 민원인은 10여 명이 되지 않았다. 탕정면사무소 앞 트라팰리스에 사는 주민 임주인(44)씨는 “간단한 민원업무가 대부분인 면사무소가 저렇게 커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면사무소를 볼 때마다 내가 낸 세금이 헛되이 쓰였다는 생각에 씁쓸하다”고 말했다.

 탕정면에서 남쪽으로 3㎞가량 떨어진 아산시 배방읍의 배방공수지구. 대형크레인과 굴착기 소리가 시끄러웠다. 2m 높이의 출입문으로는 덤프트럭이 쉴 새 없이 오갔다. 인근 아파트에서 공사 현장을 내다보니 청사 규모가 상당히 컸다. 대형 기업의 본사를 짓는 현장으로 보였다. 하지만 여기는 배방읍 사무소 신축 공사 현장이다. 두 곳 모두 아산시가 시민 세금으로 공사비를 댔다.

 지방의 읍·면사무소에도 호화청사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해 9월 준공한 탕정면 청사에는 사업비 92억원이 들어갔다. 연면적 3337㎡인 청사는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공연장까지 들어섰다. 탕정면사무소 직원은 16명, 인구는 1만8355명이다. 준공 당시 아산시는 “관공서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세련된 디자인으로 설계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공사비가 92억원 들었다는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호화청사라는 비난 때문이었다. 실제 문백면사무소 건설비는 올 들어 신축된 다른 지역의 면사무소 공사비보다 2.5배나 됐다. 올 6월에 완공된 충북 진천군 문백면사무소의 공사비는 38억원이었다.

 배방읍 신청사의 건설비는 더 들어간다. 25명이 근무할 건물의 공사비로 126억원이 책정됐다. 연 면적 8200㎡, 건축 면적 3625㎡,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읍사무소와 보건지소, 119 안전센터가 들어선다. 올 5월 착공해 내년 5월 준공 예정이다. 3.3㎡당 건축비는 600만원이다. 아파트의 표준 건축비가 3.3㎡당 530만~540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60만~70만원이나 많다. 보통 아파트 건축비가 사무실 건축비보다 높은 게 정상인데 배방읍 신청사는 아파트 건축비보다 더 들어간다. 그만큼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짓는다는 얘기다.

 아산시 이강헌 공공시설팀장은 “최근 몇 년 사이 배방읍 인구가 급격히 늘어 5만 명을 넘어서면서 노후한 옛 청사로는 민원을 해결할 수 없어 신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건축비가 많이 들어가는 이유는 고효율 전기 장비와 지열시스템 등을 설치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산시는 배방읍사무소 외에도 총 사업비 546억원을 들여 8개 청사를 새로 지을 예정이다. 시청과 시의회는 2014년까지 100억원을 들여 증축하기로 했다. 건물이 낡고 비좁다는 이유에서다. 아산시의 채무는 1000억원에 달하며 재정자립도는 46.7%로 전국평균 52%보다 5.3포인트 낮다.

 다음 달 14일 준공하는 충북 음성군 금왕읍 신청사에도 130억원의 공사비가 들어갔다. 신청사에는 읍사무소와 보건지소·주민자치센터 등이 들어선다. 금왕읍사무소 직원은 27명, 주민은 2만3000여 명이다. 음성군의 2011년 예산은 3281억원, 재정자립도는 32.8%에 불과하다.

 천안·아산경실련 정병인 사무국장은 “재정이 넉넉하지 않은 자치단체가 읍·면사무소 신축에 무리하게 예산을 투입하면 살림살이가 파탄 나고 그 피해는 시민에게 돌아간다”며 “시민들이 앞장서 세금 낭비를 감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신진호 기자
사진=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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