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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초신성(超新星)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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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

지난 추석 무렵의 밤하늘에는 2000만 광년을 달려온 초신성(超新星)의 우주 쇼가 펼쳐져 천문학도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초신성이란 격렬하게 폭발하는 별이 막대한 에너지와 함께 태양보다 몇 배나 더 밝은 빛을 쏟아내는 현상을 말하는데, ‘지극히 새로운 별’이라는 뜻에서 수퍼노바(Super Nova)라고 부른다.

 최근 이 나라 정치계는 뜻하지 않은 수퍼노바의 등장으로 충격적 공황(恐慌) 상태에 빠져 있다. 연예계의 수퍼스타도 누리지 못할 꿈결 같은 인기는 주인공이 ‘정치 9단들도 해내지 못한 신선한 양보’로 관중을 경악에 빠뜨리며 멋지게 퇴장한 뒤에도 좀처럼 식을 줄 모른다. 정치적 영역에서 무엇 하나 제대로 검증된 것이 없는 새로운 인물에게 국민들이 그토록 열광한 것은 그가 정보기술 분야에서 이룩한 업적, 미래세대에게 꿈을 심어주는 진취적 이미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익을 앞세워온 헌신적 행보 등에 감동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보혁(保革)의 진저리 나는 이념 갈등, 앞에서는 ‘공정사회’를 외치면서 뒤에선 탈세·뇌물수수·병역특혜·부동산 투기·위장전입 따위를 예삿일처럼 저지르는 권력층의 부패와 타락, 끊임없이 이어지는 끼리끼리의 패거리 인사·낙하산 인사, 비전도 경륜도 없이 허구한 날 정쟁(政爭)만 일삼는 구태정치 등등에 대한 극도의 불신이 더 큰 요인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혹자는 이번 초신성의 충격을 정당 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충격의 본질은 정당제도의 문제라기보다 정치권의 자질과 능력, 인격과 품성에 관한 문제일 것이다.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라는 그의 투박한 소신을 말 그대로 이해하자면, 북핵(北核)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결의와 양극화의 해소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다짐으로 들린다. 콘텐트의 실체는 어떤지 몰라도, 나타난 이미지만으로는 좌우에 치우치지 않는 탈이념의 가능성이 엿보인다. 건강한 시민정신이 매력을 느낄 만하다.

 완고한 이념의 외눈박이들에게 건강한 시민정신은 안타까이 묻는다. 북핵에 굴하지 않는 ‘안보의 보수’가 어째서 가진 자들의 이기심이 넘실거리는 천민(賤民) 자본주의와 악수를 나눠야 하는가? 소외계층을 따뜻이 배려하는 박애(博愛) 자본주의의 길을 열어갈 수는 없는가? 민중의 복지를 외치는 ‘경제의 진보’는 어째서 북한동포의 처절한 인권상황을 외면한 채 3대 세습독재를 그토록 싸고돌아야만 하는가? 경애하는 지도자 밑에서라면 인권도 복지도 모두 필요 없다는 것인가?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아니 자기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가진 자들은 제 것을 즐겨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워런 버핏이 스스로 세금을 더 많이 내겠다고 나선 것은 결코 위선이 아니다. ‘나눔’이야말로 공동체를 튼실하게 지키는 버팀목임을 알기 때문이다. 대통령 후보 부시의 상속세 폐지 공약을 뒤엎은 것은 빈자(貧者)들이 아니었다. 공약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보게 될 부자들이 그것을 앞장서서 반대했다. 이것이 ‘안보의 보수’가 본받아야 할 건강한 시민정신이다.

 조지 워싱턴은 적대적이던 영국과의 제이(Jay)조약 체결로 매국노라는 거센 비난을 받았고, 링컨은 남북전쟁을 이유로 인신보호영장제도를 정지시키는 비민주적 오점을 남겼다. 부시는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를 핑계로 이라크를 침공했다. 미국의 역사는 숱한 흠과 허물로 얼룩져 있다. 그러나 미국 국민은 흠집투성이인 제 나라의 역사를 반성할지언정 조롱하거나 자학(自虐)하지 않는다. 미국인들은 ‘나눔’의 기부를 가장 많이 하는 국민이다. 어려운 이웃을 품어 안는 넉넉한 마음으로 그들은 허물 많은 조국의 역사도 넉넉히 품어 안는다. 이것이 ‘경제의 진보’가 배워야 할 건강한 국민정신일 것이다.

 초신성에도 문제는 없지 않다. 변화와 새로움에 목마른 민심은 수퍼노바에 열광하기 마련이지만, 초신성은 기실 새로운 별이 아니다. 늙은 항성(恒星)이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며 소멸해가는 ‘별의 죽음’이다. 영원한 수퍼노바는 없다. 인기는 덧없는 것이다. 시대의 역사적 맥락을 짚어내는 통찰력 없이, 갈등을 녹이는 소통과 상생(相生)의 숨결 없이 그저 이미지와 트렌드에 기대어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 한다면, 결국은 폭발 뒤의 초신성처럼 화려했던 기억만을 안은 채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갈 수밖에 없다. 등장도 퇴장도 모두 섬뜩한 초신성의 교훈이다.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