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 소통→집단지성’이 사회 주도…포털 대체할 신권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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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호 10면

생일 파티 참석자들이 SNS 계정에 자신의 사진을 올려두었다면 참석자 명단을 거의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계정이 없더라도 어렵지 않다. 웹에 흘러 다니는 수많은 이미지와 비교해 동일 인물을 찾아내는 것도 마음먹기에 달렸을 뿐이니까. 누군가 나와 함께 찍은 사진에서 나를 태깅(tagging)해 두었다면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다.

중앙SUNDAY 창간 4주년 기획 10년 후 세상 <26> 소셜네트워크

이제는 참석자들의 면면을 살펴볼 차례다. 그들이 그동안 SNS에 썼던 글을 분석한다면 그들의 내면을 파악할 수 있다. 자연어 처리를 통해 ‘어떤 성향을 가진 누구누구가 치킨 집에 모여 철수의 생일 파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기에 위치정보가 더해진다. 우리가 들고 다니는 모든 스마트폰은 위성을 통해 현재 위치를 알려주는 기능을 갖고 있다. 얼마 전 문제가 된 애플의 경우에서 보듯 우리는 자신의 위치 정보를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한다. 마침내 ‘어떤 성향을 가진 누구누구가 어느 동네, 어느 치킨 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철수 생일 파티를 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다. 이 모든 것은 현재 기술로도 가능하다.

여기까지 읽으면서 공포심을 느끼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이거야말로 완벽한 빅브러더의 등장 아닌가. 하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소셜네트워크는 말 그대로 ‘사회적’인 것으로 남아있을 때만 동력을 유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SNS 통해 개인 동선·내면 실시간 파악
정모기술(IT) 강국의 자신감으로 충만하던 시절, 한국에서 만들어낸 서비스가 전 세계로 진출하는 것처럼 착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나라 포털 사이트는 서른 살도 안 된 마크 저커버그가 7년 전에 만들어낸 페이스북, 30대 중반의 젊은 엔지니어 잭 도시가 5년 전에 만든 트위터로부터 데이터를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소셜네트워크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 IT업계가 포털의 전성기에 네트워크 수평화에 대비하지 못한 이유가 가장 크다. 포털이란 거대한 정보의 가두리 양식장에서는 수많은 정보가 철저하게 수직적·위계적 방식으로 네트워킹돼 있고, 그 정점에는 포털 사이트의 초기 화면이 있다. 포털이 어떤 뉴스를 초기 화면에 배치하느냐에 따라 언론사의 뉴스 콘텐트 소비량이 좌우되고, 포털이 어떤 블로거의 포스팅을 초기 화면에 걸어주느냐에 따라 스타 블로거들이 명멸했다. 하지만 포털이 누렸던 막강한 권력과 독점적 지위는 무한정 계속될 수는 없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네트워크가 수평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트위터의 네트워크는 팔로어의 구조만을 보면 언뜻 수직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대부분의 사람은 100명 미만의 팔로어를 가진 반면, 수만 명의 팔로어를 가진 소수의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타임라인에 나타난 글이라고 해서 사람들이 다 동의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트위터에 쓰여진 글은 수많은 사람에 의해 ‘함께 해석되는’ 과정을 거친다. 집단지성이 작동하는 것이다. 수많은 팔로어를 가진 유명인의 글도 이 집단지성에 의해 거부되는 일은 종종 일어난다. 모두에 의한 해석과 변용, 동의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SNS는 과거에 비해 훨씬 수평적인 네트워크다. 포털의 핵심 기능인 검색 기능의 위상조차 넘보고 있다. 뉴스 검색을 예로 들면, 아직도 대세는 포털에서 뉴스를 보는 것이지만 트위터 이용자들은 트위터를 통해 뉴스를 본다. 집단지성에 의해 걸러지고 편집된 뉴스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수평화와 집단지성의 작동은 미디어 시장의 빠른 변화를 예고한다. 종이신문 시장에서 메이저 신문들이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SNS에서 인용되는 매체들의 순위를 꼽아보면 전혀 다른 판도를 읽을 수 있다. 상위 10위 매체 중 상당수는 종이신문만 보는 사람에게 전혀 낯선 매체들이다. 여기에 1인 미디어가 가세한다. 스마트폰 1대만 있으면 취재하고, 사진 찍고, 녹음하고, 기사송고까지 할 수 있는 시대에 1인 미디어들은 위력을 발휘한다. 9월 현재 한국인 트위터 이용자는 약 400만 명으로 추정된다. 트위터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1인 미디어들은 팔로를 통해서든 RT를 통해서든 거의 모든 트위터 이용자의 타임라인에 등장한다. 전통 매체와 달리 SNS라는 네트워크에서 편집권은 완벽하게 분산되거나 민주화된다. 다양한 매체들이 기사를 제공하면 사람들은 SNS에서 기사를 선택하고, 비평하고, 공유한다. 이 과정에서 편집권자가 드러낸 사실에 새로운 사실이 더해지거나 편집의 의도가 재해석돼 뉴스는 새롭게 태어난다. 각자가 SNS를 활용해 자신의 신문을 편집하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방송 콘텐트에서도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2002년 월드컵 열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시청 앞 광장에 모여 한국 국가대표팀을 뜨겁게 응원하던 붉은 악마의 가슴 뛰는 기억을 잊지 못할 것이다. 이제 스마트 TV는 시청 앞 광장까지 가지 않고도 내 집 거실을 광장으로 만들어준다. 반전 드라마를 연출했던 지난해 6·2 지방선거 개표방송을 생각해보자. 스마트 TV는 하나의 화면에서 방송과 SNS를 동시에 사용하게 해준다. 화면 한쪽으로 흐르는 타임라인에는 저마다의 장소에서 같은 방송을 지켜보고 있는 수많은 사람의 의견과 자료들이 속속 올라왔다. 개표 현장에서 직접 트윗을 하는 이가 올린 개표 현황은 방송보다 20분 정도 앞서갔다. 각 분야 전문가들은 자신의 지식을 활용해 유용한 결과 예측을 내놓고, 사람들은 순간순간 희비가 엇갈리는 다양한 반응들을 실시간으로 주고받았다. 개표 방송을 지켜보던 수많은 트위터 이용자들은 물리적으로 각자의 공간에 있었지만 네트워크 측면에서는 함께 있었던 것이다. 개표 방송 같은 정치적 사건뿐 아니라 ‘슈스케’나 ‘나가수’처럼 많은 이의 관심을 끄는 방송 콘텐트라면 예외 없이 가상의 광장에서 집단적으로 소비된다.

1년새 인증샷에서 팟캐스트로 변화
소셜네트워크를 통한 콘텐트 선택도 이미 보편화돼 있다. 다양한 방송 콘텐트를 다수가 함께 평가하고 공유해 각자의 방송을 즐기는 것이다. 그러면서 콘텐트 경쟁과 디바이스 경쟁을 동시에 촉발시킨다. 컴퓨터산업에서 PC가 디바이스, 소프트웨어가 콘텐트라고 한다면 싸움은 후자의 승리로 끝났다. TV 제조업체와 방송사 사이의 비슷한 경쟁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것은 IBM과 MS의 경쟁보다 훨씬 복잡하고 격렬할 것이다. 디바이스만 해도 TV·태블릿·스마트폰 등으로 다양화돼 있고 콘텐트 제공업체도 국내 방송사뿐 아니라 글로벌 거대 기업부터 1인 방송까지 존재하기 때문이다. SNS가 정치적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몇 차례의 선거를 중심으로 콘텐트의 급격한 변화를 생각해보자.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는 비교적 단순한 방식의 투표 인증샷이 대세였다. 일종의 투표 독려 놀이였다. 하지만 올해 4·27 재·보선에서는 인증샷과 더불어 유튜브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8·24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는 ‘나는 꼼수다’라는 팟캐스트(인터넷 1인 방송)가 큰 역할을 했다.

소셜네트워크는 아주 먼 옛날부터 항상 우리 곁에 있었다. 우리는 늘 그것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것을 분석하고 활용할 방안을 찾기까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다. 소셜네트워크분석(SNA)의 발전으로 인해 마침내 우리는 소셜네트워크를 현실에서 활용하기 시작했다. 구글이나 아마존은 일찍부터 방대한 데이터에 대해 소셜네트워크 분석을 실행해 활용해왔다. 그러나 구글·아마존 이용자의 대부분은 자신이 네트워크 안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SNS 등장 뒤 사람들은 비로소 소셜네트워크의 위력을 실감했다. 그러면서 권력자들의 ‘분할지배’ 전략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 사이의 엄청난 네트워크를 소수가 지배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400만 트위터 이용자 사이엔 약 16조 개의 관계가 존재한다.

소셜 컴퓨팅, 소셜 웹, 소셜 검색, 소셜 커머스, 소셜 TV, 소셜 선거. 미래의 큰 트렌드들은 한결같이 ‘소셜’이라는 접두어를 달고 있다. 공통점은 수많은 사람이 네트워크를 통해 집단지성을 만들어내고 ‘공공의 선’을 창출한다는 점이다. 네트워크의 복원은 ‘사회적인 것’의 복원이기도 하다. 매체도, 콘텐트도, 디바이스도, 선거도, 정책도 모두 네트워크를 통한 사회적 필터링에 의해 재구성될 것이다. 10년 후의 우리는 어느 분야든 자신이 가진 것을 네트워크를 통해 공유하고,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세상에 살고 있을 것 같다. 한국의 미래를 고민할 때 성장동력 못지않게 소셜네트워크가 바꾸어놓을 경쟁의 법칙을 함께 고민해야 할 이유다.



장덕진 지난해 3월부터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시카고대 사회학 박사. 소셜 네트워크 분석을 바탕으로 기업 간 출자 네트워크와 지배구조, 온라인 소셜 네트워크와 SNS, 정치·정책 네트워크 및 사회운동 분야 등을 연구했다. 또 한국인 트위터 이용자를 대상으로 정치의제 설정과 선거 파급효과를 연구 중이다. 저서로 『노무현 정부의 실험:미완의 개혁』『위험사회, 위험정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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