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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집단 지성’의 빛과 그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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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마동훈
고려대 교수·미디어학부

다양한 가치관과 지식을 갖고 있는 보통의 시민들이 자유롭게 개진하는 독립적인 생각과 의견이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방식으로 통합된다면 이는 의미 있는 사회적 자산(資産)이 될 수 있다. 영국의 저술가 피터 러셀은 이를 ‘집단 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라고 불렀다. 프랑스의 미디어 학자 피에르 레비도 최근 그의 저술에서 특히 사이버 공간에서의 집단 지성의 핑크빛 시나리오를 제시한 바 있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집단 지성의 중요한 매개체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페이스북·트위터 등 소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다. 언론의 여론조사도 실상은 보통 시민의 집단 지성을 통해 사회의 미래를 진단하고 예측한다는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 힘 있는 소수에 의한 지식과 의견의 생산·유통의 독점을 견제하고 다수의 보통 시민이 그 과정에 직접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충분히 매력적이다. 법원의 배심원 제도가 갖는 매력도 같은 것이다. 지식과 의견의 독점이 곧 권력의 독주로 이어질 수 있기에 이에 대한 대안으로 집단 지성의 가치는 분명히 크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의 집단 지성의 실체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의문이 든다. 먼저 우리 사회의 보통 시민들이 갖고 있는 가치관과 지식의 ‘다양성’에 대한 의문이다. 유감스럽게도 보통 시민들의 정치적 인지 지도는 우파 보수와 좌파 진보의 대결로 지나치게 단순화되어 있다. 아군이 아니면 모두가 적군이다. 따라서 합리적 대화와 토론의 설 땅이 없다. 이러한 이분법적 대립 구도의 가장 큰 원인은 건국 이후 분단 현실의 역사일 것이다. 여기에 현실 정치인, 지식인, 학교 교육, 그리고 언론도 한몫을 하고 있다.

 보통 시민들이 지식과 의견의 ‘독립성’을 견지하기 힘든 것 또한 문제다. 내 생각이 분명치 않으니 옆 사람 생각에 휩쓸리는 것이 당연하다. 손쉽게 눈길이 가는 곳이 당연히 페이스북과 트위터다. 그리고 언론의 대선 후보 가상 여론조사 결과다. 아직 일 년 반이나 남은 대선 후보 가상 여론조사 기사가 흥행에 성공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최근 언론의 여론조사에서 유력 대선 후보자군에 항상 들어 있는 안철수 원장 본인은 정작 출마 의지를 명쾌하게 밝힌 적조차 없다. 집단 지성을 전제로 한 정치 여론조사 결과가 실제로는 ‘나가수’식 인기투표 결과와 동가(同價)로 우리 사회에 유통되고 있다.

 사회의 지식과 의견을 ‘통합’하는 방식도 전혀 상식적이지 않고 합리적이지 않다. 몇몇 ‘파워 트위터’가 확산시키는 정보와 생각은 검증되지 않은 채 사회에 유통된다. 국민 모두가 파워 트위터가 될 수는 없다. 그래서 트위터를 통한 생각의 유통도 늘 일방향적이다. 언론의 여론조사가 언급하는 표집오차는 무작위 표본추출 원칙 준수와 비(非)표집오차 극소화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전제하에서 비로소 의미 있는 숫자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식을 무시한 숫자의 유령들이 집단 지성의 이름으로 포장되어 춤사위를 추고 있다.

 집단 지성의 전면에서 우리는 분명히 희망의 빛을 본다. 자유로운 대화와 생각의 공유라는 섬광(閃光)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집단 지성의 배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또한 드리워져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월드컵 8강전에 출전할 대표팀 베스트 일레븐을 결정하는 것은 감독 고유의 권한이다. 경기 한 시간 전 여론조사, 인기투표, 트위터 등을 통한 집단 지성의 힘에 기대어 출전 선수를 결정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우리 팀과 상대 팀 전력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 지성을 가진 감독에게 절대 권한을 주는 것이 현명하기 때문이다. 물론 책임이 따른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 각 분야에는 큰 몫을 해줘야 할 전문가 지성이 갖가지 이름의 집단 지성의 그림자에 가려져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이는 분명히 문제다.

 전문가 지성에 주어진 책무성이 강조되어야 함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전문가 지성에는 도덕적 결함이 없어야 한다. 사심(邪心)의 개입이 없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전문가 지성의 능력과 비전이다. 때로는 무능력이 비도덕성보다 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전기 부족량을 제대로 계산하지 못하는 한국전력거래소 책임자, 저축은행 파산 사태를 바라보고만 있는 금감원 책임자의 무능력에 국민은 더욱 분노한다. 그래서 국민은 또 한번 집단 지성의 빛에 눈을 돌리게 된다. 그리고 또 한번 실망하게 된다. 집단 지성의 빛과 그림자의 악순환이 우리 사회에서 어김없이 되풀이되고 있음이 유감이다.

마동훈 고려대 교수·미디어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