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 노부부의 나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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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런 걸 두고 선의(善意)라고 한다. 아무런 보상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는 베풂이다. 사회에서 얻은 것을 이웃에게 되돌리는 나눔이다. 남편의 300억원도 모자라 부인마저 남은 전 재산을 대학에 기부하는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교육자라는 사람이 언어의 뜻을 왜곡하고, 갑부에 버금가는 연예인이 정당한 세금을 빼돌리는 혼탁한 세상이지만 소금 같은 존재가 있기에 사회는 발전하다.

 19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부금 약정식에 참석한 김병호·김삼열 부부의 표정은 참으로 평온했다. 2년 전 300억원대의 부동산을 기부한 남편에 이어 부인은 50억원대의 땅을 발전기금으로 내놓았다. 이유는 소박했다. “별장을 지어 이 한 몸 편하게 즐기는 것도 좋겠지만 KAIST에 기부하면 여러 사람과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기부 정신을 이보다 함축적으로 나타낸 표현이 또 있을까.

 김씨 부부가 쾌척한 돈에는 두 사람의 피와 눈물이 스며 있다. 단돈 1원이 아까워 사카린 음료수 한잔 사먹지 않고 모은 평생의 땀방울이다. 그러곤 “‘버는 것은 기술이요, 쓰는 것은 예술이다’는 말을 좋아한다”며 노(老)부부는 실천에 옮겼다. 사후 시신 기증까지 해놓고 실평수 85㎡(26평)짜리 실버타운에 들어갔다. “물질적 재산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유산을 부모님께 받았다”는 자식의 말도 감동적이다. 부부는 일심동체(一心同體)요, 부자는 부전자전(父傳子傳)이다. 내놓을 학력이나 가문은 없지만 이보다 훌륭한 귀감이 또 어디 있겠는가.

 외국의 사회지도층이 거액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는 얘기는 더 이상 뉴스도 아닐 정도로 흔하다. 노부부의 사연을 한낱 미담으로 흘려 보내서 안 되는 이유다. 나눔문화를 확산하는 디딤돌로 만들어야 한다. 돈을 버는 것보다 잘 쓰는 일이 더 중요하다. 가진 사람이 못 가진 사람의 고충을 나눔을 통해 나눠야 한다. 우리는 재물의 많고 적음을 떠나 기부에 인색하고 부끄러운 편이다. 노부부처럼 나눌수록 아름답다는 믿음과 행동이 골고루 퍼질 때 살맛 나는 세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