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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캐피탈리즘’ 장막에 가려진 중국 자본시장의 진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레드 캐피탈리즘 (장막 뒤에 숨겨진 중국 금융의 현실)』
칼 E. 월터, 프레이저 J.T. 하위 저, 서정아 역
시그마북스, 300p, 15,000원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
빌 클린턴은 1992년 미국 대선에서 이 슬로건으로 당시 현직 대통령인 조지 W 부시를 꺾었다. 맞다. 모든 문제의 시작은 경제다. 중국도 그렇다. 중국이 G2로 굴기한 것도, 미국을 누르고 G1을 향한 차이나 드림을 꿀 수 있는 것도 무서운 속도로 성장한 경제 때문이다.
문제(trouble)의 시작도 경제다.

하나의 사례를 보자. 중국이 주식시장을 만들겠다고 결정한 것은 1990년 6월. 천안문사건 발발 1년 후였다. 그 해 말에 상하이 주식시장이 문을 열었다. 주식시장을 통해 사회불안정의 근원을 통제하겠다는 것이 첫째, 주식회사라는 제도를 통해 국유기업의 비능률을 해결하겠다는 것이 둘째 이유였다. 1988년 시즈먼(西直門) 인근의 호텔에서 국유기업 실적 개선을 위한 고위 회의가 열렸다. 주식보유제 실험이라는 처방이 논의됐다. 주식보유제 시행을 위한 조건으로 ▶사유제 방지, ▶국가자산 손실 방지 ▶국유경제의 최고 우위 보장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주식회사의 매력도 논의됐다. ▶주식회사는 기업구조상 정부의 경영 개입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으며 ▶제대로만 관리한다면 기업의 소수지분으로 국가예산과 인민은행 외에서 자본 조달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그만큼 80~90년대 중국에는 지명도 있는 기업과 자본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1993년 주룽지 총리는 중국 기업의 해외공개를 승인했다. 그 후 2009년까지 중국 국유기업이 해외 시장에서 조달한 자본은 2620억 달러에 이른다. 시작은 미약했다. 93년 해외공개 후보 기업의 숫자는 9개에 불과했다. 지명도 있는 기업은 칭다오맥주가 유일했다. 이 때 골드만삭스가 마법의 지팡이를 휘둘렀다. 중국 기업의 해외 상장 과정에서 한 몫을 챙기기 위한 묘책이었다. 단일 지방정부가 소유하고 있던 가망성 없는 기업들 중에서 옥석을 가리기 보다는 올망졸망한 성단위 기업을 전국 단위로 통폐합할 것을 중앙정부에 로비했다. 1997년10월 뉴욕과 홍콩에서 45억 달러 조달에 성공한 통신공룡 차이나모바일은 사실상 골드만삭스의 작품이었다. 인수 수수료로만 2억 달러를 챙겼다.
2009년 말 홍콩증권거래소는 주식을 공개한 중국기업의 회계감사를 재정부나 증감회가 선정한 중국의 회계법인이 맡아도 된다고 허용했다. 이 조치의 의미는 뭘까? 일반적으로 투자를 결정하는 근거가 되는 기본 데이터는 기업의 회계자료다. 중국회계법인의 비용은 외국계의 1/3에 불과하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중국회계법인을 신뢰하기 힘들다. 재정부나 증감회가 선정한 회계법인이라면 국영기업의 입맛에 맞는 결과를 내놓을 곳들이 선정될 것이다. 결국 이 조치는 외국계 투자은행들이 홍콩에서 철수하는 빌미가 될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2003년 중국인수보험공사가 뉴욕에 상장하면서 미심적은 부분이 드러나 미국 당국의 조사를 받았다. 이후 중국 국가대표기업의 뉴욕증시 상장은 중단됐다. 대신 홍콩을 노렸다. 이제는 상하이로 귀환하고 있다. 주룽지 총리가 1993년 해외주식공개를 승인했던 이유는 전문적이고 까다로운 국제 회계기준이 중국 기업의 경쟁력을 향상시킬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0년도 지나지 않았다. 과연 중국의 국영기업들이 국제 기준에 부합되는 회계 기준을 맞추고 있을까? 또,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췄다는 판단을 중앙정부가 내린 것일까? 주룽지 총리는 이러한 조치들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이상은 지난달 한국어로 번역 출판된 『레드 캐피탈리즘』의 일부다. 올 1월 미국에서 출판된 ‘Red Capitalism: The Fragile Financial Foundation of China's Extraordinary Rise’의 번역본인 이 책은 장막 뒤에 숨겨진 중국 자본시장의 허상을 날카롭게 해부하고 있다. 중국 금융개혁과정의 현장에 있었던 칼 E 워터와 프레이저 J T는 경제법칙에 중국 예외론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금융에 ‘중국식 모델’은 존재하지 않는 다는 논리다. 화려함 뒤에 숨어있는 중국의 자본시장은 대출 돌려막기에 불과하다고 신랄한 비판을 퍼붓고 있다. 게다가, 이제는 막강해진 중앙기업들의 잇권을 어떤 권력도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진단한다.

“벌거숭이 왕이 벌거벗은 사실이 드러난다 해도 그가 왕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p.199)”

문제는 여기에 있다. 저자가 중국 채권시장의 부실을 다루면서 벌거숭이 왕을 비유한 바처럼 중국 금융의 딜레마는 이미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세계 자본시장이 붕괴하면서 그나마 나은 것으로 평가 받는 중국의 금융체제마저 무너진다면 전세계 경제의 회복은 요원하기 때문이다.
내년이면 중국과 수교 20주년을 맞는 한국의 경제는 이미 중국 경제와 단단히 엮여 있다. 한국의 경제인들이 중국 금융의 실상을 냉철하게 분석한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중국 경제는 순항할 수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중국경제의 일본화'라는 시나리오에 대한 한국의 대처 방안도 필요하다. 리스크 관리는 기본의 기본이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xiao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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