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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 압도한 한국發 햄릿

중앙일보

입력

"춤·음악 등 한국적 요소에 감동받았다. 지난해에도 봤는데 훨씬 좋아졌다. 세계에서도 충분히 통할 것 같다. 배우들의 열정적 몸짓이 관객을 압도했다."

일본 최고의 실험극 마당인 도가 연극촌의 2000년 봄 페스티벌 예술감독을 맡은 미야기 사토시는 연희단 거리패(대표 이윤택)의 '햄릿 퍼포먼스-묘지 앞에서'를 보고 이렇게 감탄했다.

도가 페스티벌은 일본 중부의 산악지대인 도야마(富山) 현에서 개최하는 연극 축제. 1982년 일본 현대연극의 거장인 스즈키 다다시(鈴木忠志)가 번잡한 도쿄(東京)를 떠나 해발 1천6백여m인 이곳 도가에 연극촌을 세우고 해마다 일본 연극을 이끄는 세계 연극제를 개최해 왔다.

메인 행사는 8월 휴가철에 맞춰 열리지만 95년부터 매년 5월 별도의 봄 행사를 열고 있다.

특히 봄 연극제는 일본의 신예 연출가·작가들의 경합장으로 불릴 정도로 실험성이 강한 작품들이 소개된다.

여기에 한국의 연희단 거리패가 초청된 것. 87년 극단 목화(대표 오태석)의 '춘풍의 처' 이후 두 번째 한국작품 공연이다.

'햄릿…'는 지난달 30일, 5월 1일 오후 7시 두 차례 공연됐다.

주최측은 행사 안내문 첫장에 '아시아발(發)의 세계 연극'으로 표현할 정도로 깊은 관심을 보였다.

우리와 비슷하게 침체된 일본 연극계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덧붙였다.

이윤택의 '햄릿…'는 이번이 두 번째 일본 공연. 지난해 9월 일본어로 공연해 화제가 됐던 이 작품은 이번에도 한국어 60%, 일본어 40% 비중으로 양쪽 말을 섞어 일본 관객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였다.

지난해와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퍼포먼스의 강화. 연극의 음악·동작 요소를 크게 늘렸다. 일본 공연인 만큼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자는 취지다.

작품엔 한국적 색채가 가득했다. 햄릿의 부친 장례식을 표현한 첫부분부터 피리 소리에 맞춘 상여행렬이 들어왔고 우리 고유의 음악과 춤이 끊이지 않았다.

햄릿이 부친의 영혼과 만나는 장면에선 무당이 접신(接神)하는 모습을 원용했다.

무대 중앙과 양쪽에 각각 걸린 신라의 천마도와 고구려 벽화의 인물도 분위기를 돋웠다.

햄릿이 아버지를 죽인 삼촌에게 복수하려는 뜻에서 삼촌의 암살장면을 재현한 극중극 장면에선 사물놀이의 흥겨운 리듬을 실어 일본 관객의 열화 같은 박수를 끌어냈다.

동·서양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은 이윤택의 트레이드 마크. 그는 이번에도 삼바·클래식 선율 등을 중간중간 삽입하면서 우리 것만을 고집하는 데서 생길 수 있는 단조로움을 뛰어 넘으려고 했다.

특히 모든 등장인물이 사망한 이후 햄릿의 혼령이 커다란 천을 둘러쓰고 일어서며 만물의 재생을 상징하는 마지막 부분에선 노란 조명과 백색 안개로 무대 전체를 채우며 환상적인 제의(祭儀)를 연출했다.

일본의 전통 목조주택을 원형 그대로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음악·춤·연기 등이 어우러지는 종합적 연극을 올리기엔 공간이 다소 불편했으나 연희단측은 조명.음향.무대시설을 세심하게 배치하며 수준 높은 작품을 만들어냈다.

일본 그나우카 극단의 배우 오카다 마사코(岡田昌子)는 "한국말은 전혀 모르지만 매우 즐겁게 감상했다"며 "배우들의 힘찬 연기와 상징성이 풍부한 장면 구성이 사실주의적 성격이 강한 일본 연극계에 큰 자극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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