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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 라푸마 공동기획 해외 국립공원을 가다 ③ 케냐 마사이 마라 보호구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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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가 보고 싶었다. 사람이 자연의 일부임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곳. 서양인의 눈으로 걸러낸 영상물은 싫었다. 날것 그대로의 아프리카를 직접 눈에 담고 싶었다.

대륙 중동부의 케냐를 찾았다. 여행은 “잠보”라는 말로 시작됐다. 듣기에 유쾌했다. 아프리카 스와힐리어로 ‘안녕하세요’라는 뜻이라고 한다.

나이로비로 향하는 케냐항공 여객기에 들어서자 승무원들도 “잠보”라고 인사를 건넸다.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아기 코끼리 덤보’가 잠보를 살짝 비튼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리부”라는 말도 자주 들렸다. “환영합니다”라며 사람을 반기는 말이란다. 케냐는 온통 푸른색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국립공원인 ‘마사이 마라 보호구역’은 하늘도, 초원도 하염없이 푸르렀다.

그 푸름 속에서 야생동물은 거친 삶을 살고 있었다. 아프리카의 날것을 감상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글·사진=채인택 기자

초원은 생각보다 넓었다. 광활함 속에서 온갖 동물들로 부산했다. 끝없이 풀을 뜯는 얼룩말은 주인공. 그 사이를 돌아다니는 사파리 자동차 속의 구경꾼 인간은 손님. 멀리 속이 보이지 않는 짙은 풀이 있다. 거기엔 육식동물들이 몸을 낮춘 채 사냥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여긴 테마파크가 아니다. 모든 게 실화다.

# 치타와 붉은 점


마사이 마라에 있는 사로바 마라 로지에 여장을 풀었다. 주변은 온통 야생동물의 침입을 막는 전기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자연 보호를 위해 숙소는 형식적으로 텐트였다. 텔레비전도 없었다. 대신 침대와 세면 시설은 대도시 호텔과 차이가 없었다. 자연과 문명의 타협이라고나 할까.

 여장을 풀자마자 사파리 차량인 랜드크루저를 타고 초원으로 나갔다. 운이 좋은 날이었다. 난생 처음 야생 치타를 만났다. 그것도 눈앞에서다. 처음엔 치타 두 마리만 보이더니 차량으로 가까이 가자 붉은 점이 눈에 확 들어왔다. 영양의 일종인 임팔라의 간이었다. 긴 뿔이 달린 수컷 임팔라 한 마리가 두 마리의 치타에게 사냥 당해 먹히고 있는 중이었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어 이미 숨이 끊긴 상태로 보였다. 운전기사이자 가이드인 윌슨은 “야생에선 자비란 게 없다”며 “사냥당한 동물은 목숨이 붙어 있는 상황에서 먹히기도 한다”고 설명해줬다. 가벼운 소름이 끼쳤다.

# 심바와 피비린내

초원에선 아무도 야생동물을 말릴 수 없다. 수컷 사자 한 마리가 묘한 짓을 한다. 지나가는 사파리 자동차의 바퀴에 몸을 비비고 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행운은 계속 이어졌다. 이번엔 사자를 만났다. 스와힐리어로는 ‘심바’라고 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에선 사자의 이름이었지만 여기에선 보통명사였다. 만난 것은 사자 가족이었다. 세어보니 16마리나 됐다. 이들 중 10여 마리가 몰려 검은 물소 한 마리를 뜯어먹고 있었다. 먹다가 풀밭으로 가고, 다른 곳에 있다가 다시 다가와 뜯어 먹었다. 집안의 큰딸 정도로 보이는 암사자 한 마리는 배가 불룩한 채 근처에 누워 있었다. 가끔 꼬리만 움직일 뿐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배가 터지도록”이라는 표현은 이럴 때 안성맞춤일 것이다.

사자 가족이 물소를 뜯어 먹고 있다. 암사자 한 마리는 배가 불룩 올라올 정도로 포식했다. 그래서 뒤로 처져 풀 위에 발랑 누워 있다. 물소는 뿔과 갈비만 남기고 사라졌다. 주변은 온통 피비린내다.

 주변에 피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아프리카·초원·야생에 대한 어떤 동영상도 냄새를 전해주진 못한다. 그 냄새를 이곳에서 처음 접했다. 사실 초원은 의외로 깔끔했다. 풀 냄새가 조금 날뿐 공기는 신선했다. 그 맑은 공기를 뚫고 비릿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날것 그대로의 아프리카가 풍기는 살육의 냄새였다.

 이튿날 다시 그곳에 가봤다. 물소는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남은 것은 거대한 뿔과 머리 부분뿐이었다. 며칠 전까지 뛰놀았을 바로 그 벌판에서 물소는 이렇게 사라졌다. 핏빛이 비치는 기다란 갈빗대만 남기고서 말이다. 새끼 사자 두 마리가 뜯겨 나온 물소 꼬리를 물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 입에는 핏물이 묻어 있었다. 캐릭터 인형으로 써도 될 정도로 귀엽게 생긴 녀석들이었다. 이윽고 식사를 마친 암사자 한 마리가 근처 웅덩이에서 물을 마셨다. 사자도 목이 타나 보다.

# 초식동물의 눈동자

사파리의 하이라이트라는 사냥 장면을 찾아 랜드크루저 차량은 끝없이 초원의 길을 달렸다. 거대한 코끼리가 떼를 지어 나타나고, 나무 뒤에서 갑자기 기린 떼가 고개를 들고 튀어나왔다. 무뚝뚝한 눈초리의 얼룩말과 겁먹은 눈망울의 임팔라, 그리고 맑은 눈동자의 톰슨가젤이 떼를 지어 풀을 뜯다 갑자기 달아나기도 했다. 뿔이 무서운 야생물소 떼와 코뿔소가 동상처럼 서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떼거리로 몰려다니는 초식동물은 두 가지 특징이 있었다. 하나는 계속 풀을 뜯는다는 것이다. 그들도 먹어야 하니까. 또 하나는 이들은 결코 한 방향만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자나 하이에나를 비롯한 포식자가 오는지 사방을 살피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특히 기린은 서로 마주보고 풀을 뜯었다. 멀리서 보면 긴 목을 서로 감고 있는 듯이 보였다. 마사이족이 만들어 파는 한 쌍의 기린 인형이 서로 목을 휘감은 듯한 모양인 이유를 여기서 알 수 있었다.

# 살육의 현장

보호구역 내 텐트형 숙소. 자연보호구역인 사파리에 현대식 건물을 마구 지을 수 없다는 명분과 관광객을 유치해야한다는 실리의 절충점이다. 사파리 속 관광객 해방구다. 텐트 형식이지만 내부시설은 글로벌 스탠더드다.


갑자기 20대가 넘는 사파리 차량이 몰려들었다. 사파리 운전기사들은 좋은 구경거리가 있으면 무전으로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다. 그래도 이 정도면 보통의 두 배를 넘는 숫자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간단한 구경거리 때문이 아니었다. 얼룩말을 사냥하는 암사자 세 마리를 보기 위해서였다. 사자들은 인내심이 강해 보였다. 300m 앞에 있는 얼룩말 두 마리를 노려보며 바람 반대 방향에서 초원에 주저앉아 있었다. 얼룩말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암사자들은 앉아서 조심조심 앞으로 몸을 옮겼다. 먹느냐, 먹히느냐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실제 사냥이 벌어지려면 한두 시간은 걸릴 것이라는 윌슨의 설명에 딴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튿날 아침 랜드크루저로 다시 초원을 달렸다. 해가 뜨면 야생동물이 아침을 먹으러 모여들기 때문이다. 무리에서 떨어진 어린 임팔라와 마주쳤다. 임팔라는 즐겁게 뛰어놀고 있었지만 뭔가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랜드크루저가 자리를 비키자 얼룩덜룩한 털가죽의 하이에나가 나타났다. 조금 더 가자 다른 하이에나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말로만 듣던 포식자의 포위 공격이었다. 하이에나도 아침을 먹으러 모인 것이었다.

 초원에선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사냥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람만이 사냥을 금지당하고 있었다. 동물 개체수가 충분하던 20세기 중엽까지는 사냥이 있었다. 케냐에 영어 단어 게임(game)이 붙은 로지나 보호구역이 수없이 많은 이유다. 게임은 사냥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과거 이곳은 유럽인이 사냥 관광을 즐기던 장소다. 지금은 전 세계에서 모여든 다양한 인종의 관광객이 아프리카를 보려고 몰려든다. 날것 그대로의 아프리카를 보려고 말이다.

●마사이 마라 자연보호구역

아프리카 케냐의 동남부에 걸쳐 있는 국립자연보호구역이다. 사냥과 목축을 하며 살아가는 마사이족 지역 안에 있다. 마사이 마라는 마사이족 언어로 ‘마사이의 얼룩’이라는 뜻이다. 지평선에 가까운 초원 전체가 야생동물·나무·구름 등 자연이 만드는 그늘로 인하여 얼룩이 지기 때문이다. 직접 두 눈으로 지켜보지 않으면 실감 나지 않는 이름이다. 마사이 마라 자연보호구역은 면적이 서울의 2.5배인 1510㎢에 이른다. 수도 나이로비에서 220㎞ 정도 떨어져 있다. 초원 지대에 수없이 많은 야생동물이 서식한다. 해마다 7~10월이 되면 탄자니아 세렝게티 초원에서 얼룩말 20만 마리, 톰슨가젤 50만 마리, 물소 130만 마리가 먹이를 찾아 떼를 지어 이동해오면서 장관을 이룬다. 이들을 노려 사자·하이에나·치타·자칼·여우 등 수많은 육식동물도 함께 몰려온다.

●여행정보

케냐 항공이 방콕을 경유해 수도 나이로비까지 운항한다. 나이로비에서 마사이 마라까지 차량으로 이동하면 시간도 3∼4시간씩 걸리고 비포장도로에서 흔들림(현지에선 아프리카 마사지라고 부른다)을 겪어야 한다. ‘아프리카 마사지’는 재미난 경험이긴 하지만 체력이 약하다면 소형 프로펠러 항공기로 이동하는 게 편하다. 나이로비에서 1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다. 상공에서 초원을 내려다보며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느낌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은 덤이다. 마사이 마라 지역은 해발 1500m 이상의 고원지대라 기온이 섭씨 20도 전후를 유지한다. 아침과 저녁엔 쌀쌀하게 느껴질 수 있으니 긴팔 옷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황열병 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 말라리아 예방약을 복용하는 것은 선택 사항이지만 권장된다. 하나투어(02-2127-1190)와 CJ 월디스(02-2182-3151)가 케냐 일주 8일 상품을 운영한다. 케냐항공 02-317-8877, 주한케냐대사관 02-3785-2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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