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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아파트에서 산다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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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기택
시인

이 년 전에 할머니가 된 지인이 있다. 딸과 손자 얘기가 나오기만 하면 얼굴이 환해지고 목소리가 명랑해진다. 그런데 최근에는 표정과 말투가 확 바뀌었다.

 “첫 손자가 동생이 생기니까 질투하고 해코지하고 난폭해졌어. 우리 딸은 그런 첫째한테 시달려서 마음고생이 이만저만 아냐.”

 딸이 인품과 가정환경 모두 훌륭한 남편과 시부모를 만났다고 좋아했는데, 얼마 전에는 귀엽고 똑똑한 손자를 보았다고 자랑했는데, 둘째 손자가 생기자 기쁨이 걱정으로 바뀌고 말았다.

 “우리 딸이 시골에서 클 때는 동네 아이들이랑 산이나 들에서 뛰어놀아서 동생 질투 같은 건 겪어본 일이 없어. 육아가 이렇게 큰 문제가 될 거라고는 눈곱만큼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우리 애들은 모두 성격도 밝고 말도 잘 들어서 거저 키운 것 같아. 그런데 우리 딸은 서울로 시집가서 아파트에 살다 보니까 옛날에 없었던 육아 문제가 보통 큰 문제가 아닌가 봐.”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보면 옛날 시골 아이들은 ‘그냥 자연의 일부’였으며 자연이 한시도 정지해 있지 않고 살아 움직이고 변화하니까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 산과 들은 군것질거리가 가득한 곳이며 최상의 놀이터였다. 자연을 자신의 일부나 이웃, 가족으로 생각했던 고대인들처럼 문명의 영향을 덜 받은 아이들도 그런 것 같다. 아이들은 동물은 물론 인형, 장난감, 나무, 풀과도 이야기한다. 자연이 다 친구가 되면 세상은 그만큼 넓어진다.

 아파트는 벽으로 되어 있어 자연과 세상과 단절되기 쉽다. 아파트에 사는 아이에게 세상은 엄마, 아빠, 나, 동생만 있는 폐쇄적인 공간이다. 세상으로 무한히 뻗어가야 할 아이의 시야는 아파트와 핵가족만큼 좁아져서 가족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엄마가 갓난아이에게 조금 더 손이 가는 것, 자신에게 신경을 덜 쓰는 것이 엄청난 사랑의 결핍이 되고 세상의 모든 고통과 맞먹는 것이 된다. 그것은 엄마로부터 소외되는 게 아니고 자연과 자아로부터 소외되는 것이다. 그 소외된 자리로 게임, 인터넷 등이 들어오면 소외는 더 강화된다.

 어른도 이런 소외와 불안을 겪지만 그러려니 한다. 적응되었다고는 하지만 내면은 조금씩 곪아 있을 것이다. 현대인은 누구나 어느 정도는 신경증을 앓고 있다지 않은가. 하지만 아이는 다르다. 아이의 몸은 오염되지 않은 자연에 가깝기 때문에 문명의 작은 힘에도 큰 충격을 받고 훼손될 수 있다. 아이의 반응은 도시 환경이 얼마나 몸과 마음에 위협적인가를 보여주는 척도가 될 수 있다. 마음도 햇볕을 쬐고 공기가 통하고 흙과 녹색의 기운을 흡수하고 자연과 대화해야 하지만, 그것이 차단되면 얼마나 빨리 황폐화되는가를 아이는 온몸으로 보여준다.

 도시를 시골로 바꿀 수는 없다. 아이가 문명의 충격을 흡수하면서 어른이 되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학교 폭력을 비롯한 여러 청소년 문제나 인간성 상실 문제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아이들에게 잃어버린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일은 더 이상 낭만이나 이상이 아니라 시급한 현실적인 문제다.

김기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