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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88) 남정임 보호 작전(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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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신성일이 남자 주인공을 맡은 영화 ‘백발백중’에 출연한 여배우들. 오른쪽부터 고은아·남정임·전양자. 남정임의 또렷한 외모가 두드러진다.

1969년 겨울 일본 촬영현장에서 내가 배우인지 모를 정도로 남정임을 보호하다가 서울로 돌아왔다. 책임감에 짓눌려 여행의 흥취를 느끼지 못했다. 공항엔 남정임의 어머니가 나와 있었다. 나는 “아무 일 없이 인계합니다”라며 그녀를 어머니의 품에 안겨주었다.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설원의 정’ 제작자인 재일동포 니시야마도 그녀를 어떻게 해보지 못했다.

 71년 무렵 어느 날 남정임의 약혼 발표가 터져 나왔다. 재일동포 임방광과 결혼한다는 것이었다. 아쉬웠다. 그렇게 공들여 보호했는데 결국 재일동포와 결혼하다니…. 남정임은 결혼 직후 일본으로 떠났다. 아예 종적을 감춰버렸다.

 남정임은 신인시절부터 자기 뜻을 주저 없이 밝히는 성격이었다. 실제 생활이든, 스크린이든 감정 표현에 솔직했다. 웬만하면 참고 넘어가는 다른 여배우와 달랐다. 그녀의 면모를 보여주는 일화 하나. 어느 날 한 제작부장이 스케줄 문제로 남정임의 집을 찾아갔다. 그때 트러블이 생겼는데, 남정임은 그 자리에서 하이힐을 벗어 제작부장의 이마를 때렸다고 한다. 66년작 ‘백발백중’의 스틸 사진에서도 그런 당찬 성격 읽을 수 있다.

 그녀의 일본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76년 무렵 제1회 도쿄국제영화제에 초청 받은 정진우 감독은 NHK 방송국 1㎞ 거리에 자리한 한 불고기집을 찾아갔다. 남정임이 결혼한 재일동포 집안이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정 감독은 66년 나와 남정임 주연의 ‘악인시대’ ‘초연’ 등을 찍으며 남정임을 최고의 배우로 올려놓았다. 그녀는 식당에서 발바닥에 불이 나게 뛰어다녔고, 시아버지는 그녀를 다그쳤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재일·재미교포는 대단하게 인식됐다. 하지만 그건 허상이었다. 정 감독은 그날 숙소로 돌아와 울었다고 한다. 공들여 키운 여배우가 ‘저 꼴이 무엇인가’ 하고.

정진우 감독

 정 감독은 다음 날 오후 다시 찾아가 남정임을 만났다. 남편과의 관계가 좋은 것 같지 않았다. 결국 남정임은 정 감독의 설득으로 이혼을 하고 한 달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고, 그 해 정 감독이 운영하는 우진필름에서 ‘나는 고백한다’(감독 정소영)로 재기했다.

 한국에선 현 대한도시가스 고문인 노승주가 그녀를 따라다녔다. 정 감독은 그를 불러 “너, 남정임에게 또 다시 상처 주면 죽어”라고 했고, 노승주는 “남정임을 사랑하니 결혼하겠다”고 다짐했다 한다. 78년 그녀는 노승주와 재혼했다.

 나는 남정임이 노승주와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있던 터였다. 노승주는 나와 절친한 김동건 아나운서를 깍듯하게 형님으로 부르며 지내는 사이였다. 나와도 형·동생이 될 수밖에 없는 관계였다. 어느 날 첫째 아이 돌잔치한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들 부부는 분위기로 보아 내게 연락을 안 할 수 없었다. 오래 못 만났던 아쉬움을 돌잔치에서 달랬다. 내가 알기로 그녀는 노승주와 잘 살았다.

 92년엔 남정임이 유방암에 걸려 사망했다는 소식을 신문으로 접했다. 빈소에 문상을 갔다. 40대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그녀.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른다. 지금도 남정임이 삿포로그랜드호텔 벽을 두드리던 소리를 잊을 수 없다.

신성일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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