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폭동 선동’ 영국선 중범죄, 한국선 표현의 자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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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 폭동을 일으키려 했지만 미수에 그친 청년들에게 영국 법원이 이례적으로 중형을 선고해 논란이 일고 있다. SNS 사용이 활발한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중형 선고 배경이 관심이다.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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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잉글랜드 서북부 체스터시 법원은 지난 16일 페이스북을 이용해 자신들이 사는 지역에서 폭동을 유도한 혐의로 조던 블랙쇼(20)와 페리 서트클리프키넌(22)에게 각각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블랙쇼는 폭동 장소로 제시한 시내 맥도날드에 혼자 나타났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서트클리프키넌은 다음날 “농담이었다”며 글을 내렸다. 실제 폭동이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중형을 선고한 이유에 대해 재판부는 “시민들에게는 공포를, 경찰에게는 중대한 긴장상태를 야기했다”고 밝혔다. 이들에게 중범죄법(Serious Crime Act 2007)에 따라 ‘고의로 범죄를 조장하거나 도운 혐의’를 적용한 것이다. 앞서 영국 법원행정처는 “폭도들에 대해 일반적인 양형기준을 고려하지 말고 판결하라”는 지침을 내렸었다.

 양형분야 전문가인 승재현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연구교수는 “불문법 국가인 영국에선 법정형(法定刑)이 없는 경우 구체적이고 엄격한 양형 기준이 마련돼 있다”며 “하지만 이번 폭동은 특수한 상황인 만큼 기존의 양형기준으로는 적절한 처분이 어렵다고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영국 변호사인 조희경 홍익대 법대 교수는 “2005년 알카에다의 런던 테러 이후 영국 내 보안 관련 법규가 강화됐다”며 “캐머런 총리의 엄벌 방침도 강경 판결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만약 국내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법적 처벌은 어떻게 될까. 이영만 대검찰청 공안기획관은 “인터넷을 통해 폭동을 선동한 것이 단순히 폭력만을 위한 것이라면 소요죄 등으로 처벌되지만, 국가와 헌법을 전복할 목적으로 폭동 선동 게시물을 올렸다면 내란죄로 처벌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 이 때문에 실형 처벌을 받은 사례는 거의 없다(아래 그래픽 참조).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하태훈(형법) 교수는 “폭동의 예비단계까지 처벌하려고 하다 보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위험도 있다”며 “성숙한 민주시민들은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단순한 선동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정보통신 분야 전문인 최영로 변호사는 “SNS와 인터넷의 파급력이 엄청나기 때문에 영향력에 따른 규제의 필요성도 커진다”며 “ 미수에 그쳤더라도 폭동 유발처럼 명백하게 사회적 해악을 끼칠 수 있는 경우는 표현의 자유를 규제해야 한다”고 했다.

 인터넷이나 SNS 등 파급력이 큰 수단이라고 해서 표현의 자유를 특별히 더 규제하는 법은 현재 없다.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가 이른바 ‘미네르바법’(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1항·‘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처벌한다’)에 대해 “공익을 해할 목적이라는 뜻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위헌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법무부는 당시 대체 입법 방침을 밝혔지만 현재는 정부 입법의 절차상 문제 때문에 의원 입법을 기다리고 있다. 한나라당 이두아 의원이 발의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국방·외교·식품·환경·재난전쟁·테러 등 국가적으로 중대한 분야에 대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 상황과 관련된 허위 내용의 정보의 유통’으로 처벌 대상을 구체화했다. 이 법안은 지난 2월 제출됐지만 아직 상임위원회의 심의도 거치지 못했다. 승재현 교수는 “영국의 사례처럼 일반인에 대한 공황 상태를 발생시킨 경우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보호 중 어느 쪽의 법적 이익이 더 큰지 살펴야 한다”며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구희령·이현택 기자

◆미네르바법=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의 헌법소원에 따라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린 옛 전기통신기본법 47조 1항(‘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처벌한다’). 검찰은 허위 외환정책 유포 혐의로 기소된 미네르바를 비롯해 인터넷·휴대전화 등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기소된 이들에게 이 조항을 적용했었다.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 어떻게 규제해 왔나

· 2008~2009년 촛불집회 관련 ‘전경 시위대 강간설’ 등 유포한 6명 전기통신기본법 위반 혐의로 기소(3명 무죄, 3명은 벌금 700만원~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 2009년 4월 서울중앙지법, 허위 외환정책 유포 혐의(전기통신기본법 위반)로 기소된 ‘미네르바’에 무죄 선고

· 2010년 12월 헌법재판소, 일명 ‘미네르바법’(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1항)에 위헌 결정

· 2011년 1월~ 위헌 결정에 따라 천안함 유언비어 배포자 등에 대한 공소 기각

한나라당 의원들, 인터넷상 유언비어 처벌 내용 담은 ‘정보통신망법’ 복수 개정안 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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