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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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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심상복
논설위원

“진짜 피로회복제는 약국에 있습니다.” 동아제약은 지난해 2월부터 이런 말로 박카스 광고를 해왔다. 참 고약한 내용이다. 약국이 아닌 수많은 상점에서 비슷한 제품을 팔고 있지만 그것들은 다 ‘사이비’라는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제동을 걸어 이 광고가 이달부터 사라졌다. 지난달 하순 박카스가 의약외품으로 분류되면서 수퍼마켓에서도 팔리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광고, 동아제약 혼자만 잘살자고 한 건 아니었다. 약사들의 어려운 처지도 감안한 ‘상생’의 광고였다. 다 읽으면 의문이 풀릴 것이다.

 박카스는 건강드링크류 가운데 부동의 1위다. 1961년 알약 형태로 세상에 처음 나왔다. 당시는 약이 흔치 않았다. 먹으면 일시적으로 피로가 가시는 효과가 있고 모양도 약같이 생겼으니 자연스럽게 약으로 취급되었다. 2년 뒤부터 지금처럼 병에 담겨 판매됐다. ‘청량강장(淸凉强壯)영양제’라 해서 정부도 일반의약품으로 분류해줬다. 지금껏 약국에서만 판매해 온 근거다.

 어제 점심 먹고 신문사 근처 편의점을 찾았다. 약국 외에서도 박카스를 판다는데 실제로 그런지 보고 싶었다. “박카스 있어요?” 세 군데 다 고개를 저었다. GS25·바이더웨이·훼미리마트다. 앞의 두 곳에서는 아예 물건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팔고 싶은데 물건이 없어 못 파는 거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훼미리마트 점원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했다. “물건은 지금 있는데 팔지 말라고 해서 못 판다”고 말했다. 누가 팔지 말라고 하느냐고 묻자 대답하기 곤란하다고 했다.

 언론이 진수희 복지부 장관 말만 믿고 현실과 동떨어진 보도를 한 것이다. 지난달 28일부터 박카스류의 드링크와 액상소화제 등 48종의 의약외품을 편의점·할인점·수퍼마켓에서 판다고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좀 더 큰 매장을 가봤다. 롯데마트 서울역점에는 조그맣게 ‘의약외(外)품’ 코너가 마련돼 있었다. 박카스는 있었지만 파는 약은 몇 종에 불과했다. 편의점에는 없는 박카스가 어떻게 여기는 있을까. 정부 시책에 호응하기 위해 도매상에게 매달려 소량을 들여놨다고 한다.

 박카스는 지난해 3억5000만 병(1283억원)이 팔렸다. 지난 50년간 170억 병이 나갔다. 이 음료 하나가 동아제약 매출의 약 15%를 차지한다. 회사를 제약업계 정상으로 밀어올린 효자다. 2만 곳에 육박하는 전국 약국에서는 효녀다. 약사들의 수입에 보배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2004년 광동제약이 경쟁제품을 내놓았다. ‘비타 500’이었는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동아제약은 카페인을 뺀 박카스를 출시하면서 정부에 의약외품으로 허가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약사들이 반대해 무산됐다. 보배를 수퍼마켓에 뺏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드링크류나 가정상비약은 약국 외에서도 팔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국 등 선진국 사례도 첨부됐다. 무엇보다 국민 편익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뤘다. 올 초 이명박 대통령도 언급했다. 하지만 진척이 없었다. 약사들의 반발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들은 내년 선거에서 지고 싶으면 맘대로 하라는 식으로 으름장을 놨다. 어떤 약사들은 박카스라도 남용의 위험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소비자가 진짜 약을 달라고 할 때도 약사가 아무 소리 없이 내주는 것이 익숙한 풍경 아닌가. 그들은 ‘수퍼 약 판매’ 반대에 대해 국민 보건을 내세우지만 수입 감소가 주된 이유라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안다.

 의외로 동아제약도 반대했고 지금도 그렇다. 박카스를 여러 상점에서 팔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인데 왜 그럴까. 약사들이 무섭기 때문이다. “당신들, 박카스를 다른 곳에도 주면 알아서 해.” ‘진짜 피로회복제는 약국에 있다’는 광고 카피는 약사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박카스를 계속 약국에서만 팔아야 한다는 뜻도 담고 있는 것이다. 박카스 하나도 맘대로 못 판다면 다른 약들은 뻔하다. 동아제약은 생산 능력이 안 돼 늘어난 수요를 맞추기 어렵다는 변명도 한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지만 생산시설을 늘리려는 의지는 있는지 궁금하다.

 지금 할인점에 박카스를 공급하는 사람들도 동아제약 직원이 아니다. 전문 도매상이다. 동아제약에서 물건을 받아다 약국에 먼저 돌리고 남은 걸 여러 곳에 나눠 준다고 한다. 동아제약이 직접 납품하지 못하는 것 역시 약사들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근소한 차로 대웅제약을 누르고 처방약에서도 1위에 올랐다. 어렵게 점령한 고지지만 약사들에게 밉보이면 순식간에 미끄러진다. 법보다 주먹이 무서운 이유다. 조폭도 아닌 전문가 집단이 대명천지에 완력을 과시하고 있다.

심상복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