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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빈곤층의 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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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누군가가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이곳으로 데려온다면, 이런 곳이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런던 시민은 얼마나 될까? 구역질 나는 냄새와 쓰레기더미, 쓰러질 것 같은 집들, 그 안의 초라한 내용물들이 산 것이나 죽은 것이나 모두 지저분한 길바닥으로 끈적거리며 흘러나오는 이 지역 공기를 마시고 산다는 걸 믿을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찰스 디킨스가 1850년 주간지 ‘하우스홀드 워즈(Household Words)’에 묘사한 런던 빈민가 풍경이다(미첼 스티븐스, 『뉴스의 역사』). 영국 도시 빈곤층(urban poor)은 산업혁명 때 생겼다. 이들이 입에 풀칠하려면 하루 18시간 노동은 예사였다. 구빈(救貧)은 국가적 과제였다. 하지만 1834년 생긴 신(新)빈민구제법은 빈민을 구제하지 못했다. 이 법엔 “국가의 도움이 ‘게으른 빈민’을 양산한다”는 중·상류층의 불만이 반영됐다. 빈민들은 나라로부터 돈을 받는 대신 공장에서 일을 했다. 노동력 착취가 빈발했다.

 디킨스는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1837)로 이를 고발한다. “제발 조금만 더 주시면 안 될까요?” 공장 배식 책임자에게 애걸하다 쫓겨나는 올리버의 사연은 19세기 영국의 어두운 자화상이다. 구세군도 이때 생겼다. 구세군의 ‘3S’는 비누(Soap)로 더러운 몸을 씻어주고 뜨거운 수프(Soup)로 배를 채워 빈민을 구제(Salvation)하겠다는 구호다.

 20세기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1902년 소설가 잭 런던은 르포 『밑바닥 사람들』을 쓴다. 런던 최하층이 모여 사는 이스트엔드에 넝마를 걸치고 잠입했다. “그들에겐 가정생활이라는 게 없다. 언어를 보면 안다. 아버지가 퇴근하다가 길에 있는 아이들에게 엄마가 어디 있는지 물으면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건물에요.’”

 최근 런던 토트넘 등 영국 각지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전문가들은 양극화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에서 비롯된 ‘도시 빈곤층의 난(亂)’으로 진단한다. 세기가 바뀌면서 디킨스 시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도시는 번영했다. 그만큼 사람들의 소비 욕구도 강렬해졌다. 비누와 수프로 구제되기는커녕 ‘풍요 속 빈곤’에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이라고 다를까. 상점 유리창을 깨고 노트북 컴퓨터와 트레이닝복을 훔친 후 트위터로 생중계하는 영국 젊은이들의 약탈극은 섬뜩하기 그지없다. ‘남 일’ 같지 않아서다. 
기선민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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