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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케네디도 ADHD, 잘 다루면 성공 열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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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호 18면

유독 실수가 잦은 사람들이 있다. 크고 작은 일로 일상이 삐거덕거린다. 해야 할 일을 미루거나 약속에 늦어 쩔쩔맨다. 상대방 이야기를 제대로 못 듣고 하고 싶은 말만 늘어놓는다. 분위기 파악을 못해 남의 비위를 건드릴 때도 있다. 차분하지 못하고 주의가 산만하다. 도대체 왜 이런 걸까.
누구에게나 있는 성격상의 특성 같지만 정도가 심하면 ADHD(attention-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를 의심할 수 있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다. 흔히 아이들 질환으로 알려졌지만 어른도 예외는 아니다. ADHD는 전체 인구의 약 6%에서 발견되며 그중 절반은 성인기로까지 이어진다.
성인 100명 중 3명이면 유병률이 꽤 높은 편이다. 성인ADHD가 무엇이고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경희의료원 정신과 반건호(사진) 교수에게 들어봤다.

경희의료원 정신과 반건호 교수가 말하는 성인ADHD

-어떤 경우에 성인ADHD를 의심하나.
“대개 주의력이 떨어져 한 가지 일을 지속하지 못하고 주변 소음에 민감하다. 이야기를 잘 놓치고 글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과잉행동으로 뭔가 하지 않으면 불안해한다. 가만히 있을 땐 손발을 꼼지락거리거나 몸을 비튼다. 참을성이 없어 쉽게 짜증이나 화를 낸다. 정서가 불안해 기분이 슬펐다, 즐겁다 급변한다. 말과 행동을 충동적으로 할 때가 있다. 자신에게 너무 엄격하거나 자기 비난이 심하다. 쉽게 따분해하고 의욕을 잃는다. 스트레스에 취약해 쉽게 포기하거나 좌절한다. 정리정돈이나 일을 마무리 짓는 데 곤란을 겪는다.”

-일반인에게도 나타날 수 있지 않나.
“성인ADHD는 증상이 실제생활에 얼마만큼 장애를 일으키느냐로 판단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다음을 자가진단법으로 내놓았다. 1)어떤 일을 마무리해 끝내는 데 어려움이 있다. 2)체계적인 일을 순서대로 못한다. 3)약속이나 할 일을 잊곤 한다. 4)과제를 피하거나 미룬다. 5)오래 앉아 있으면 손발을 만지거나 꼼지락거린다. 6)지나치게 활동적이거나 뭔가를 해야 할 것 같다. 이 같은 특성이 자주 나타나 불편을 겪는다면 전문의 진단을 권한다.”

-학교를 마치고 직장생활도 멀쩡히 하는데 ADHD일 수 있나.
“의사들 중에도 ADHD가 있다. 시험을 통과해 졸업과 취업은 하지만 군복무나 사회생활을 하는 데 어
려움을 겪을 수 있다. 감기가 지능이 좋은 사람을 피해가지 않듯 ADHD도 성적과 상관없다.”

-자신이 ADHD라는 걸 모르는 어른이 많은데.
“불과 30년 전만 해도 ADHD라는 병명 자체가 없었다. 우리나라에 알려진 것도 2000년부터다. 어릴 때 문제가 있었더라도 모르고 지나쳤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없던 증상이 현대사회에서 새롭게 생긴 건 아니다. ADHD란 병명이 없었을 뿐 이 같은 특성을 기록한 문헌은 많다.”

-어릴 때 나타났다가 어른이 되면서 사라지는 게 아니었나.
“과거엔 소아에게만 발생하는 병인 줄 알았다. 주의력 결핍과 과잉행동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두드러지다 사춘기를 넘기며 괜찮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fMRI(기능성 자기공명영상촬영)로 한 뇌 영상 연구로 그 이유가 밝혀졌다. 뇌는 원래 5~7세에 갑자기 확 발달한다. 반면 ADHD가 있으면 뇌 발달이 정상보다 5~6년 늦다. 속된 말로 철이 늦게 드는 것이다. 그러다 18~20세가 되면 뇌 성숙이 마무리되는데, 이때 ADHD 뇌도 정상의 80% 수준까지 따라잡는다.”

-ADHD가 나타나는 이유가 뭔가.
“뇌의 신경생물학적 손상이 원인이다. 이마 쪽에 있는 전전두엽(prefrontal lobe), 변연계의 디이랑(cingulated gyrus), 평형과 자세 유지에 관여하는 소뇌 기능이 문제를 일으킨다. 일반인에 비해 해당 부위 뇌 부피가 작거나 활성이 떨어져 있다.”

-뇌 기능 이상이라면 고칠 수 있나.
“명상이나 요가로 베타파를 늘려 주의력을 강화할 수 있다. 또 메칠페니데이트나 아토목세틴의 치료제를 먹으면 떨어진 뇌 기능을 활성화한다.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을 해소한다. 노력만으론 개선되지 않았던 것도 약물의 도움을 받으면 쉬워진다. 스스로 문제를 조절할 수 있을 만큼 훈련됐다면 복용 용량이나 횟수를 줄일 수 있다. 개인적으론 약물을 평생 복용하길 권한다.”

-성인인데 지금이라도 치료해야 할까.
“ADHD는 중독적 성향이 강하다. 알코올이나 담배, 성, 인터넷과 같은 강력한 자극에 빠지기 쉽다. 성격이 급해 교통사고를 내거나 대인관계가 어렵다. 이직이나 이혼율도 높다. 우울증이나 강박증, 불안장애가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 노력했는데도 안 되니 피해의식이 크다. 건강에서도 심장질환이나 비만, 콜레스테롤 수치, 수면장애 가능성이 크다.”

-ADHD는 나쁘기만 한 건가.
“ADHD는 확실히 다른 사람보다 활력이 넘친다. 수퍼 에너지다. 정리는 안 되지만 생각이 많은 건 호기심과 창의력이 뛰어난 거다. 충동성은 결단력과 순발력으로 키울 수 있다. 이를 잘 조절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여러 분야에서 ADHD였지만 성공한 사람이 많다. 화가 살바도르 달리, 피카소, 고흐가 그렇다. 문학가로는 톨스토이, 버지니아 울프, 피츠제럴드, 예이츠, 로버트 프로스트가 있다. 경영인 중에도 ADHD였으나 성공한 사례가 있다. 헨리 포드, 말콤 포브스, 빌 게이츠, 앤드루 카네기, 라이트 형제, 에디슨, 벤저민 프랭클린이 좋은 사례다. 정치가 가운데는 존 F 케네디, 체 게바라도 있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도와줄 방법은.
“병이라는 것을 인정해 줘야 한다. ‘아, 이 사람이 아프구나. 최선을 다했는데도 이 정도밖에 안 된 거구나’ 하며 이해해 줘야 한다. 환자 스스로도 어떤 일이 터질 때마다 ‘나는 역시 안 돼’ 하는 잘못된 자책을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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